올해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수퍼 듀오가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 국내외 무대와 콩쿠르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는 10대와 30대 독주자들이 나란히 팀을 이뤄서 한 무대에 서는 것. 그동안 K팝에서 솔로 인기 가수들이 팀을 이루는 프로젝트 그룹은 많았지만, 한국 클래식계의 수퍼 듀오는 새로운 현상이다. “코로나 장기화에 따라 해외 스타들의 내한 공연이 사실상 막히면서 국내 음악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로를 찾아나선 것”(음악 칼럼니스트 황장원) “요즘엔 피아노 반주자를 보고 이중주 티켓을 산다. 그만큼 반주가 묵묵한 조력자에서 동등한 동반자로 변한다는 의미”(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라는 분석이다.

2022년 1월 13일 서울 연세대 내 금호아트홀에서 만난 첼리스트 한재민과 피아니스트 임윤찬/ 고운호 기자

‘겁없는 10대’ 한재민 임윤찬

피아니스트 임윤찬(17)과 첼리스트 한재민(15)은 한국 음악계의 ‘소년등과(少年登科)’로 불린다. 한재민은 지난해 5월 에네스쿠 콩쿠르 최연소 1위에 이어서 10월 제네바 콩쿠르 3위에 곧바로 입상하는 괴력을 보였다. 그는 “첫 대회를 마치고 돌아와서 자가 격리 중에 다음 대회의 서류 합격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며 “사실상 1년 내내 콩쿠르만 준비하고 생각하며 보낸 셈”이라고 말했다.

임윤찬은 지난해 19차례 무대에 오르며 ‘포스트 조성진’의 후보로 꼽힌다. 역시 2018년 클리블랜드 청소년콩쿠르 2위, 2019년 윤이상국제콩쿠르 1위에 올랐다. 그는 “가장 많이 연주한 해였지만 힘들 적마다 온라인에서 러시아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31)의 살인적 스케줄을 찾아보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말했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자인 트리포노프는 기복 없는 연주 스타일로 정평이 있다.

두 살 차의 이들은 해외 유학 경험 없는 국내파 영재들이다. 2017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영재원), 2021년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 나란히 들어간 ‘동기생’이다. 영재원 시절부터 실내악 팀을 함께 결성해서 호흡을 맞췄다. 10대답게 유튜브를 통해서 서로의 연주를 확인하는 것도 공통점이다. 한예종 입학 전에 1~2년간 홈스쿨링 과정을 거친 점도 같다. 이들은 “당시 새벽 2~3시까지 연습하느라 새벽에 문자로 안부를 주고받았다”며 웃었다. 한재민이 청산유수 달변이라면, 임윤찬은 묵묵한 과언(寡言)에 가깝다는 점이 다르다.

이 듀오는 27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이중주 무대를 선보인다. 지난해 1월에 이어서 꼭 1년 만의 결합이다. 지난해 러시아 레퍼토리에 이어서 올해는 터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파질 사이(51)의 소나타 등 20~21세기 작품들에 도전한다. “콩쿠르로 잠시 반짝 빛나고 마는 별이 되고 싶지는 않다.”(한재민) “지금까지 이룬 건 보잘것없다. 늦게 활짝 피는 꽃이 되고 싶다.”(임윤찬) 무서운 10대들은 속뜻도 깊었다.

2022년 1월 11일 오후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 김영욱(바이올린) 손정범(피아노)이 본지와 인터뷰중 포즈를 취했다. /김지호 기자

‘베토벤 완주 도전’ 30대 김영욱 손정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33)과 피아니스트 손정범(31)의 30대 듀오는 올해 세 차례에 걸쳐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0곡)을 완주하는 등정에 나선다. 노부스 4중주단 멤버인 김영욱은 팀에서도 5차례에 걸쳐서 베토벤 현악 4중주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 사실상 그는 1년 내내 베토벤만 연주하는 셈이다. 김영욱은 “꼭 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지만 두 가지 큰 도전을 동시에 앞두고 있어서 기대 반(半) 두려움 반의 심경”이라고 말했다.

손정범은 2017년 독일 뮌헨의 ARD 콩쿠르와 2019년 인터내셔널 저먼 어워드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지금까지 독주회에서 베토벤 소나타를 거의 빼놓은 적이 없는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전문가)’다. 이들 역시 영재원과 한예종에서 함께 공부한 동문이다. 그 뒤 독일 뮌헨 음대에서 유학하면서 20대 시절을 함께 보냈다.

독일 정상급 경연 대회인 ARD 콩쿠르 역시 이들을 묶어주는 공통 분모다. 이 대회의 2012년 실내악 부문 2위 수상팀이 노부스 4중주단, 2017년 피아노 우승자가 손정범이다. 학교뿐 아니라 ‘콩쿠르 선후배’이기도 한 셈이다. 손정범은 “노부스 4중주단이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연주할 때 객석에서 종일 들으며 응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김영욱은 “정범씨가 우승한 다음 날 학교 앞 카페에서 함께 축하 뒤풀이를 했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에게도, 실내악단 멤버에게도 ‘이중주’는 새로운 도전이다. 김영욱은 “넷이 함께 무대에 오를 때는 미리 준비한 약속대로 연주하는 것이 중요한 반면, 둘이 연주할 때는 상대적으로 피아노에 의지하는 부분이 커진다”고 말했다. 손정범은 “혼자보다 둘일 때 든든한 건 피아니스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들의 베토벤 전곡 무대는 1월 25일, 4월 6일, 8월 30일 예술의전당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