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매가 느껴지지 않도록 매끈하게 펴져야 하는 것은 폴더블폰만이 아니다. 출판계에서 최근 각광받는 ‘누드 사철 제본(누드제본)’은 책을 180도 쫙 펼치도록 책을 만드는 방식. 책을 펼쳤을 때 가운데 부분이 물리지 않고 평평하게 펼쳐진다. 종이묶음 여럿을 실로 꿰매 합친 뒤 책등(서가에 세로로 꽂았을 때 보이는 등 부분)을 표지로 덮지 않고 마무리해 실이 그대로 보이는 제본 방식이다.

180도로 펼쳐지는‘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 /양지호 기자

글만큼이나 이미지 정보 전달이 중요한 책이 늘어나면서 희귀했던 누드제본이 늘어나고 있다. 이달 나온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문학동네), ‘알고 보면 반할 지도’(태학사), ‘베케, 일곱 계절을 품은 아홉 정원’(목수책방) 등이 이 방식을 활용했다. 각각 고양이 사진, 고(古)지도 도판, 정원 풍경을 여럿 담았다. 이들 책에 실린 사진과 도판은 한 면을 넘어 옆면을 ‘침범’한다. 누드제본 책은 펼쳤을 때 가운데 부분이 갈매기 모양으로 굴곡지지 않고 평탄한 특징을 활용한 것이다. 가운데 물림이 없어 이렇게 편집해도 이미지 전체가 그대로 보인다.

누드제본은 상대적으로 낯선 방식이다 보니 실물 책을 본 적 없이 온라인으로 구매한 독자가 ‘파본 아니냐’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엄연한 의도가 담긴 제책 방식. 책등에 노출된 실도 디자인 요소의 하나다. 정원 책은 녹색 실로, 고양이 책은 노란색 실로 포인트를 줬다.

책을 묶은 선이 그대로 보이는 ‘누드제본’책이 인기다. /양지호 기자

누드제본은 책등에 제목을 쓸 수 없어 서가에 꽂아두면 독자들이 어떤 책인지 알아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출판사들은 제목을 쓴 띠지를 두르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서가에 꽂힌 책보다는 온라인을 통해서 또는 서점 매대에 놓인 책을 사는 비율이 높아진 것도 출판사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부담을 덜 느끼는 이유다. 책이 펼쳐진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독서대 없이 볼 수 있다는 것도 소소한 장점이다.

‘어서 오세요, 고양이 식당에’를 편집한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자는 “인쇄 기간이 두 배로 늘어나고 제작비도 늘어나지만 도판 사진이 많은 책인 경우에는 저자와 독자의 만족도가 높아서 감수할 만하다”고 했다.

누드제본 확산은 종이책 소비보다 전자책과 영상물 소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책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주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책도 디스플레이라고 할 수 있고, 사진·도판이 중요한 책들은 독자들에게 보다 충실한 시각 체험을 제공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춘다”며 “앞으로 더 다양한 시도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