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퀴즈’는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 왼쪽은 1973년 MBC 방송 모습. 오른쪽은 지난 10일 EBS 방송으로, 정답자가 다음 라운드로 갈 친구를 지목하는 방식을 도입해 심리 게임을 유도했다. /MBC·EBS

퀴즈 하나.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은 무얼까? 흔히 KBS1의 ‘전국노래자랑’을 떠올리기 쉽지만, 아쉽게도 땡. 정답은 EBS에서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에 방송하는 ‘장학퀴즈’다. 1973년 MBC에서 첫 방송을 한 뒤로 1997년 EBS로 이관돼 지금껏 시청자를 만났다. SK그룹의 후원에 힘입어 올해 48세를 맞은 장학퀴즈는 1980년 탄생한 전국노래자랑보다 일곱 살 형인 셈이다. ‘빰빰빰~’ 첫 소절만 들어도 프로그램을 연상케 하는 오프닝 음악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 참가자의 잠을 깨우는 모닝콜로 등장할 정도로 남녀노소에게 친숙하다.

EBS 관계자는 장수의 비결로 “시대의 흐름에 맞는 변화”를 꼽았다. MBC 시절 개인전으로 시작했지만 EBS 때 팀전이 도입됐다. 2008년 개인전이 부활했고 2013년 2인 1조로 진행하기도 했다. 2016년엔 학교를 직접 찾아가 촬영했다가 2018년 스튜디오 녹화로 전환했다. 지난해부터는 보컬·메이크업 아티스트·뮤지컬 배우 등 각종 ‘멘토’를 불러와 해당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이 관련 분야 퀴즈를 풀고 전문가 조언을 얻게 했다.

첫 소절만 들어도 '장학퀴즈'를 연상케 하는 오프닝 음악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 참가자의 잠을 깨우는 모닝콜로 등장할 정도로 남녀노소에게 친숙하다. /넷플릭스

장학퀴즈는 지난 10일 1143회 방송에서 새로운 규칙으로 또 한 번 변신했다. 퀴즈를 맞힌 학생이 다음 라운드에 함께 진출할 한 명을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해 학생들 간 ‘심리 게임’을 유도했다. 정답자는 다른 참가자에게 취미나 퀴즈 상식 등을 자유롭게 물으며 누굴 뽑을지 정한다.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략이 달라진다. 약해 보이는 학생을 뽑으면 당장 유리할 것 같지만, 막판까지 생존했을 경우 그에게 도움을 받는 ‘친구 찬스’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똑똑해 보이는 친구를 뽑으면 다음 라운드 때 반대로 나를 뽑아줄 신뢰와 기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날 방송에선 1라운드 정답자 대전여자상업고 라수연(17)양이 청심국제고 최규민(17)군을 뽑았다. 그러나 다음 라운드 때 최군이 정답을 맞히고 다른 학생을 선택하려하자 라양은 소리친다. “호랑이 새끼를 데리고 올라왔구나!” 의리를 저버린 학생은 다른 친구들에게 ‘민심’을 잃고 다음 선택에서 제외되는 쓴맛을 보기도 한다. 라양은 패자부활전 상대로 최군을 지목해 승리를 거두며 최종 우승자가 됐다.

지난 10일 오전 방송한 '장학퀴즈'/EBS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와 관계는 어른이 예상하기 어렵다. 이은정 EBS CP(책임 프로듀서)는 “Z세대인 요즘 10대는 전문가보다는 또래에게 배우는 걸 좋아하고,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흥미를 느낀다”며 “10대들의 주도성과 역동성을 방송에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명문 고교 간 자존심 대결에서 벗어나, 다양한 학생들이 어울려 문제를 푸는 것도 또 다른 재미. 이번 방송에선 특목고인 대원외국어고·청심국제고·청주외국어고, 특성화고인 대전여자상업고·원주금융회계고, 일반고인 세광고 학생이 출연해 지략을 겨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