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에는 돈이 든다.” 등단한 지 11년, 그간 ‘젊은 작가상’(2018)을 받고 6권의 장편과 단편소설집을 펴낸 소설가 임성순(45)씨는 최근 한 출판 잡지 기고를 통해 국내 소설가의 씁쓸한 현실을 이렇게 알렸다. 그에 따르면 좋은 소설은 다양한 삶의 경험을 한 작가에게서 나올 확률이 높다.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경험해야 하고, 발품을 팔며 취재해야 한다. 임씨가 2014년 출간한 장편 ‘극해’는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토대로 상상력을 확장시킨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에 표류한 일본 포경선에서 벌어지는 생존 투쟁을 담았다. 기자와 만난 그는 “자료 조사를 위해 3년간 일본을 오가며 2000만원을 들여 소설을 썼지만, 정작 소설은 5000부 판매되며 적자가 났다”며 “갈수록 위축되는 문학 시장에서 후배 작가들은 나 같은 시도를 엄두조차 못 낼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마주한 소설가는 무엇을 할까. 그는 “비용 없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문학적인 선택은 문장 자체의 예술성에 천착하는 것”이라며 “오늘날 한국 소설은 책상머리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미적이고 아카데믹한, 감수성 넘치고 지적인 독자들만 읽는 문학이 되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문학의 경쟁자는 넷플릭스·유튜브·게임

출판 시장 불황 속에서 문학에 대한 독자의 관심도 해마다 줄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주요 78개 출판 기업 매출액은 4조808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4.1% 감소했다. 문학 신간 발행 부수는 1262만권으로 전년에 비해 9.8% 줄었다. 1980~2000년대만 해도 인기작에 오르면 100만부 판매를 노려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1만부를 팔면 베스트셀러 대접을 받는다. 10만부 판매를 기념하는 개정판이 따로 나올 정도다. 설립된 지 20년이 넘은 한 문학 전문 출판사 관계자는 “보통 소설 신간 초판(1쇄)을 1000~2000부 찍는데, 신인 작가 10명 가운데 9명은 증쇄하지 못하고 재고가 남는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과거 남녀노소 누구나 즐겼던 대중문화로서 문학은 ‘찾는 사람만 찾는’ 문화 상품이 됐다. 오늘날 문학 시장을 지탱하고 있는 주요 독자는 20~40대 여성이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설·시·희곡 등 문학 도서를 구매한 남녀 성비는 3:7로, 여성 독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영상이 활자를 압도하는 시대, 문학의 경쟁 상대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게임이 됐다. 소설가 임씨는 “일터에서 종일 일하고 귀가한 이들에게 문학은 유튜브와 넷플릭스, 게임 콘텐츠와 비교해 상응할 만한 무언가를 해주지 않으면 선택에서 밀려나게 된다”며 “예전처럼 다른 문학 작품과의 예술적 싸움이나 문학적 성취가 더는 중요해지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업 작가는 옛말… 인스타 방송하고 예능 출연

문학이 문자 예술보단 여가 선용의 수단이 되면서 재미는 더욱 중요해진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쉽게 읽히면서 즐거움을 주는 소설이 독자의 선택을 받기 유리해졌다”며 “과학소설(SF)·판타지 등 문학의 변방에 머무르던 장르 소설이 대세로 떠오르는 이유”라고 말했다. 예스24가 지난달 실시한 온라인 독자 투표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이벤트에서 포항공대 출신 SF 소설가 김초엽(28)이 31만394표 중 5만679표(10.9%)를 얻어 1위로 선정됐다. 20·30대 직장인의 삶을 재치 있는 필치로 그리는 장류진(35)이 2위(10.4%), SF 소설가 천선란(28)이 3위(8.4%)로 뒤를 이었다.

문학의 주요 소비자층인 20·30세대 여성들은 주로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작가와 작품을 접하고 소비한다. 스마트폰 화면에 작가와 작품이 얼마나 노출되느냐, 온라인 친구들에게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았느냐가 작품 선택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김성수 대중문화 평론가는 “젊은 독자일수록 소셜미디어에 친숙한 작가를 찾게 되고, 작가에 대한 팬덤 현상도 결집해 나타난다”고 말했다.

작품 흥행의 공식이 달라지면서 출판사들 스스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채널을 운영하고, 작가들은 작품을 알리기 위해 더욱 분주해졌다. 독자와 만나는 오프라인 행사가 없어진 코로나 시국에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됐다. 신작이 출간되면 작가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라방’(라이브 방송)을 한다. 작품이 크게 흥행하려면 기존의 골수 독자층을 넘어 일반 대중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면에서, 대중 영향력이 큰 TV 방송 출연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전업 작가’로 살아남기 힘든 척박한 상황에서 소설가에겐 엔터테이너의 기질까지 요구되고 있다. 소설가 장강명은 tvN 프로그램 ‘요즘 책방 : 책 읽어드립니다’에, 소설가 김중혁은 KBS2 토크쇼 ‘대화의 희열2’에 고정 패널로 출연했다. tvN 예능 ‘알쓸신잡’에 출연했던 소설가 김영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정기적으로 ‘라방’을 열고 9만3000팔로어를 상대로 책을 소개하는 북클럽을 운영한다. 지속적으로 독자와 접점을 확보해야 인지도와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소설가 정유정과 정세랑은 tvN 토크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방송인 유재석과 대담하고 작품을 소개했다. 유튜브로 방송을 본 10·20대 새로운 독자들이 작품을 찾게 되면서 작품 흥행에 동력을 얻었다는 평가다.

◇”20대는 ‘해리포터’ 세대. 희망은 있다.”

위기에 처한 문학 시장에서 작가만 탓하는 태도론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문학은 어디까지나 소설가 개인이 만드는 언어 예술이기에 부활의 열쇠도 작가에게 있다. 소설가 임씨는 “신예 작가들이 자기만의 방을 벗어나 여러 문화와 세계를 경험할 기회를 주는 쪽으로 정부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며 “다양한 작가가 다채롭고 참신한 이야기로 독자의 마음을 끊임없이 두드리면 독자들도 화답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망의 증거로 ‘해리포터’를 꼽았다. “지금 20대들은 해리포터를 읽고 자란 세대거든요. 문학이 주는 기쁨을 경험해 본 친구들입니다. 아직 그 친구들이 시장에 들어와 문학을 지탱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분명히는, 우리가 그 친구들이 원하는 걸 못 주고 있을 뿐이죠.” 지난해 교보문고에서 책을 산 20대는 전체의 19.5%였다.

소설가 임성순/김지호 기자

[문예지는 옛말… 전자책·온라인 잡지가 대세]

주간 현대문학·스위치 등 출판사들, 신규서비스 앞다퉈 출시

스마트폰과 태블릿PC 화면으로 글자를 읽는 데 익숙한 독자들이 많아지면서 문학도 전자책·구독 서비스로 변신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전자책 매출은 약 4200억원으로, 전통적인 종이책 매출(약 3조6600억원)에 비해 10분의 1(11%) 수준이다. 하지만 역성장하는 오프라인 서점과 달리 전자책 유통업체 매출액은 전년에 비해 55% 늘었다. 기존에 종이책 출시 이후 2주~1달 시차를 두고 전자책을 발행하던 출판사들도 요즘엔 출간과 거의 동시에 전자책을 내놓고 있다. 정안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편집자는 “전자책 대여든 구매든 읽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작품에 대한 반응이 빠르게 나타난다”며 “재빨리 마케팅을 할 수도 있고, 소문으로 이어지면 흥행을 노려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들은 문예지 같은 전통적인 문학 전달 방식에서 탈피해 웹진(온라인 잡지)·뉴스레터 등 신규 서비스를 선보이며 독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출판사 사계절·위즈덤하우스·반비 등은 독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문학 관련 온라인 ‘뉴스레터’를 보내고 있다. 창비는 지난 4월 모바일 이용자를 위한 카카오톡 문학 알림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카오톡으로 200자 원고지 10∼30장 분량의 짧은 글을 일주일에 한 번씩 보내주는 방식으로 한 달 만에 구독자 6000명을 모았다.

온라인 문학 서비스인 창비의 ‘스위치’, 문학동네의 ‘주간 문학동네’는 문예지에 발표된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온라인 단독 연재 후 출간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66년 넘게 월간 문예지를 발간한 현대문학도 지난달 온라인 연재 서비스인 ‘주간 현대문학’을 도입했다. 윤희영 현대문학 팀장은 “젊은 독자들을 발굴하는 온라인 문학 서비스는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