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한국) vs 아야이(중국) vs 이마(일본)’. 언뜻 보면 각국을 대표하는 걸 그룹이나 모델 이름 같지만 아니다. 이 셋의 공통점은 가상 인플루언서(influencer).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가상 인플루언서 관련 마케팅 비용이 2019년 약 8조8400억원에서 2022년 약 16조6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지털 공간을 현실 세계만큼 넘나드는 MZ세대(1980년대 이후 출생한 이들)를 중심으로 이들의 영향력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각종 패션지 화보는 물론 각종 광고 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로지, 아야이, 이마(왼쪽부터). 단순히 화면으로 존재하는 가상 인간이 아니라 3D 모델로 존재한다. AI '딥러닝' 기술이 투입된 로지의 경우, 화보나 광고 촬영에선 대역 모델이 대본에 따라 표정과 몸짓을 만들면 로지가 학습한 뒤 표현해 촬영한다. /로지 인스타그램·Ayayi’s Xiaohongshu·이마 인스타그램

최근 신한라이프 TV 광고로 화제가 된 한국의 로지는 지난해 8월 소셜미디어에 처음 등장했다. 171㎝의 늘씬한 스타일, 쌍꺼풀 없이 큰 눈매에 살짝 돋은 주근깨가 매력적인 그녀는 패션을 즐기는 여행 마니아로 인기를 얻어갔다. 이집트, 탄자니아, 태국 등지를 넘나들었고,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까지 다녀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자 “멋진 곳 다녀오셨네요”라는 댓글이 붙었다. 2030세대에게 핫플레이스로 꼽히는 가로수길 파스타 맛집 ‘배러댄비프’에서 인증샷을 올리고, 냉동삼겹살 맛집인 ‘잠수교집' 성수점에 들러 “고기는 역시!”라고 감탄사를 남긴다. “당장 달려가고 싶어요”라는 댓글이 잇따랐다.

보통 사람처럼 일상에 녹아들었던 로지는 이제 그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국 출신 사진작가가 2017년 탄생시킨 세계 최초 가상 수퍼모델 슈두(shudu)와 올 초 국내 패션지 화보를 찍으며 본격적인 모델 활동을 알렸다. 패션지 기자로도 공식 활동하고 있다. 국내 MZ세대가 좋아하는 얼굴을 조합해 탄생한 그녀는 높아진 인기에 최근엔 TV 광고까지 찍었다. 첫 TV 광고였던 금융회사에 이어 자동차⋅패션 등 기업 광고도 곧 공개될 예정이다. 로지의 인기는 국경을 넘는다. 로지를 탄생시킨 싸이더스스튜디오엑스 김진수 이사는 “중국 등 해외 현지 브랜드에서 광고 모델이 돼 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면서 “다른 나라 가상 인플루언서들로부터 ‘우리나라에 와서 협업해보자’는 제의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스타트업 Iww가 지난 2019년 개발한 가상 인플루언서 이마(imma·今)는 분홍색 단발머리에 전형적인 일본 아이돌 스타일. 인스타그램 팔로어 34만명에 달한다. 최근 일본 아마존 패션쇼 홍보 대사도 됐다. 가구 브랜드 이케아 광고 영상도 찍는 등 지난해만 7억원을 벌어들였다.

중국의 경우 지난 5월 스타트업 란마이 테크놀로지에서 아야이(Ayayi)를 선보이며 경쟁에 가세했다. 잡티 하나 없이 완벽한 피부가 특징. “놀랍도록 미세한 피부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겔랑과도 협업했다. 최근 상하이에서 열린 ‘미키 마우스’ 전시회에 독점 초청받았다. 소셜미디어 조사기관 하입오디터(HypeAuditor)는 “가상 인플루언서와 팔로어의 게시물 상호작용률(댓글과 좋아요 반응 등)이 실제 사람끼리의 경우보다 3배 높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만큼 신뢰하고 친근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디지털 가상공간에서 아바타를 만들어 즐기는 MZ세대에게 이들은 자연스러운 친구인 셈이다. 지난 2016년 등장한 미국의 가상 인플루언서 릴 미켈라의 경우 친근한 얼굴에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인스타그램 팔로어 3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수입만 130억원에 달한다. 미국 블룸버그는 “가상 인간은 스캔들이나 정치적인 발언 등 사생활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작고, 국경을 넘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에 가장 매력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