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meritocracy)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헌정사상 최초의 30대 제1야당 대표가 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능력주의와 공정한 경쟁을 앞세우고 선거 공천에 자격시험을 도입하겠다는 등의 계획을 밝혔습니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와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기존의 계급사회를 유지하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고안된 통치 기술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뜨거운 감자가 된 능력주의를 주제로 세 필자의 긴급 지상 논쟁을 싣습니다.

①최진석(찬성): 가짜 표창장이 公正인가

②노정태(반대): 자칫하면 新계급사회 된다

③임명묵(제3의 의견): 20대에게 ‘공정한 경쟁’은 찬반, 그 이상

/일러스트=박상훈

정치심리학자인 뉴욕대 조너선 하이트 교수는 그의 저서 ‘바른 마음’에서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공정을 해석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지적한다. 전자의 공정이 결과를 고려한 공정이라면 후자의 공정은 기여와 보상의 비례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의 공정과 능력주의는 그런 면에서 전형적인 보수적 공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준석 대표에게 폭발적 지지를 보여준 청년층은 보수화한 것일까?

지난 5년 동안 청년 남성들이 보여준 표심을 고려하면 이것을 단순히 보수화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정부를 격렬히 비토하는 ‘이대남(20대 남성)’은 탄핵의 주역 중 하나로서 민주당을 지지했다. 그런 그들이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무언가 엄청나게 다른 존재가 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급격하게 변한 그들의 표심과 이준석에 대한 열광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애당초 이대남들의 열망과 민주당의 정체성은 어느 정도 상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보수 정당을 싫어했던 것은 보수 정당이 청년층을 존중하지 않는 권위적 면모를 너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은 경쟁에 지친 청년층에게 노력을 더 하라고 촉구했고, 의무에 대한 보상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추구한 정책 또한 청년층, 특히 이대남에게는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민주당은 경쟁을 완화시키고 하한선을 더 높여주겠다고 이야기했으며, 청년층 내부의 성별 권력 관계를 지적했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하한선을 높이는 데 있는 게 아니라, 더 어려워진 상향 이동을 용이하게 만들어달라는 것이었으며, 남성 또한 사회 시스템의 피해자일 수 있다는 피해 의식을 보듬어 달라는 것이었다.

임명묵 1994년생·'K-를 생각한다' 저자

이준석 대표가 제시한 공정과 능력주의는 철저히 이런 이대남들의 정서적인 불만과 분노에 부합하는 방식에서만 인기를 얻었다. 공정과 능력주의는 일관된 논리와 철학적 기초에서 나왔다기보다는 그들이 느끼는 불만족, 좌절감, 분노를 발화할 때 사후적으로 입힌 포장지에 가까웠다. 이대남들의 정서와 하이트가 말한 보수적 공정은 어느 정도 통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굳이 그 단어가 아니었어도, 이대남들의 정서를 대변해줄 의지만 있었다면 그는 어떻게든 세를 얻었을 것이다. 이준석은 본질적으로 그들에게 ‘소환된’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고전적인 정치보다는 대리 만족을 제공해주는 엔터테인먼트에 더 가까운 것이다. 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는 결코 그가 탑승한 돌풍을 폄훼하려고 쓴 것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여론이 엄청난 속도로 형성되며, 그 내용이 대체로 특정 정체성으로 뭉친 사람들의 불만과 분노를 반영하는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개인화된 영상 미디어가 보편화한 지금 시대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대변해주는 사람이 ‘적’들을 쳐부수는 ‘사이다’를 원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준석 현상이 특별한 것은 현상의 내용 자체보다도 엔터테인먼트에서 상식이던 문법을 정치에서 구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열광한 20대 남성들은 유튜브에서 그가 고리타분한 중년 후보나 페미니스트 여성에게 ‘유효타’를 먹였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그를 계속 지지했다.

이준석 현상을 둘러싸고 능력주의나 공정의 가치가 진심으로 실현되기를 원한 것이라고, 혹은 이준석에게 선동되어 극우화되었다고 논하는 것은 가치와 이념을 중심으로 정치를 바라보는 고전적 시각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런 개념어의 의미를 따지는 것에서 떨어져 시각을 달리 돌려보면 무언가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얼마 전 이준석 대표가 대변인 선발을 ‘미스터트롯 방식’으로 ‘공정’하게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쩌면 ‘공정’보다도 ‘미스터트롯’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