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작사 이혼작곡2' 주인공 이민영. /인터뷰&영상=최보윤 기자, 사진=고운호 기자

“현대 사회에서 상처 안 받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극 중에서 송원이 그런 말을 해요. ‘옳고 그름, 논리적으로 맞는지 틀리는지를 따지지 말고, 분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요….’ 대본을 읽으면서 제가 마음을 다스렸던 방식과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송원을 연기하면서 제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죠.”

자분자분 말을 잇던 배우 이민영(45)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오는 12일 시즌2로 돌아온 TV조선 주말 미니시리즈 ‘결혼작사 이혼작곡2’에서 이혼녀 송원을 맡은 그녀는 “시청자분들도 각자의 아픔을 자기 방식대로 투영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분명 손가락질의 대상이 될 불륜녀 역할이지만, 이민영을 향해 응원을 보내는 시청자 목소리도 상당하다. 실제로 과거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그녀이기에, ‘송원 속 이민영’을 찾아 격려하는 것이다.

/고운호 기자 10일 만난 이민영은 “재방 삼방까지 챙겨보고 대사도 다 외우실 정도로 ‘결사곡’의 열혈 팬인 부모님이 든든한 삶의 버팀목”이라면서 “지금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지켜나가고,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영이 맡은 송원은 시즌 2의 문을 여는 중심축이 된다. 극 중 10살 연하 판사현(성훈)에게 결혼 생활 상담을 해주다 선을 넘는 1부에 이어, 2부는 송원의 임신이 시작되면서 사현과 그의 아내 혜령(이가령)을 둘러싼 갈등이 커진다. “살다 보면 절대 선도, 절대 악도 될 수 없다는 걸 다시금 배워요. 송원은 대다수에게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 여자죠. 아내에게 없는 따스함을 송원에게서 찾는 사현에겐 마리아 같은 여자지만, 혜령에겐 악녀일 수밖에 없어요. 저도 살면서 나의 선함이 상대에겐 그렇게 비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선과 악은 상대적이라는 걸 드라마를 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죠.”

'결혼작사 이혼작곡2' 이민영과 성훈 만남 장면 /지담 제공

‘이혼녀·불륜녀’라는 캐릭터가 도전일 법싶다. 하지만 그는 “연기를 하면 할수록 단단해지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임성한 작가님은 일상적인 대사에서 삶의 철학을 읽어내시잖아요. 인간 밑바닥부터 훑으며 민낯을 보여주기도 하고, 바람 난 아버지에게 일침을 가하는 딸의 대사처럼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하죠. 대본을 오십 번 육십 번 반복해 읽고 곱씹다 절로 눈물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에요.”

지난 1월 TV조선 '뽕숭아학당'에서 임영웅과 듀엣으로 '이제 나만 믿어요'를 부른 이민영. 이민영은 "너무 좋은 명곡을 감히 시도한 터라 덜덜 떨면서 마이크 잡았는데 영웅씨가 잘 받쳐줘서 끝까지 부를 수 있었다"고 웃으며 "멜로디부터 절절하고 심금을 울리는 노래여서 연습하면서도 계속 울컥해 현장에서 울지 않으려 정말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녀의 진심을 다하는 모습은 예능 ‘뽕숭아학당’에 출연했을 때 특히 빛을 발했다. ‘예능 울렁증’에 청심환 두 개를 먹고 출연했다는 그녀는 임영웅의 ‘이제 나만 믿어요’를 부르며 애써 눈물을 삼켰고, 급기야 옆에 있던 이가령까지 눈물샘을 터뜨리고 말았다.

고운호 기자

그에게 연기는 삶이었고 물 흐르듯 자연스레 맞이한 운명이었다. 4살 때 아동 모델 선발대회에서 1등을 한 뒤 영화 ‘바다로 간 목마’(1980)에서 장미희 딸로 데뷔했다. 이듬해 일일 연속극에 캐스팅됐다. “한글을 조금 빨리 깨친 덕”이라고 웃던 이민영은 중학생이 되면서 학업에 전념하려 연기를 접었다. 하지만 친구 따라 간 고교 축제에서 덜컥 연극 주인공으로 발탁되며 연극영화과에 지원했고, 1994년 또 다른 친구 따라 치렀던 MBC 공채 탤런트에 합격하면서 줄곧 화면 앞에서 살았다. 주인공을 도맡아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과거에 대한 집착보다는 세월에 순응하고 거스르지 않는 삶에 스스로를 맡긴다. “모든 일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서 어릴 땐 연기에 대한 갈증이나 절실함이 부족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점점 나이 들고 아무래도 입지가 줄어들다 보니 요새는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일하는 게 감사해요.”

고운호 기자

주로 지고지순하고 단아한 역할을 맡았던 그녀가 이제 도전하고 싶은 역할은 영화 ‘퍼펙트 케어’(2020) 속 주인공 말라(로자먼드 파이크)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기꾼. “나서는 걸 겁내는 성격이었다”는 그는 “평생 알을 깨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배역의 경중보다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데에 보람을 느끼고 있어요. 윤여정 선생님처럼 연륜과 통찰력으로 삶을 내다보시는 어르신들이 요즘 대세잖아요. 저도 계속 내 안의 알을 깨면서 길게 가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