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해설음악회의 진행을 맡고 있는 피아니스트 김용배(왼쪽부터), 비올라 연주자 김상진, 지휘자 정치용.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가장 높은 클래식 음악회는 오전 시간에 열리는 ‘마티네 콘서트’다. 티켓 가격(3만원)이 비교적 저렴하고, 음악과 작품 해설까지 곁들이는 데다가, 코로나 이전에는 간단한 다과도 제공했다. 예술의전당은 이런 마티네 콘서트의 원조. 2004년 상시 해설 음악회를 도입한 이후, 전국 각지 공연장으로 퍼져나갔다. 지금도 예술의전당에서는 매달 세 차례씩 오전 음악회가 꼬박꼬박 열린다.

‘마음을 담은 클래식’(넷째주 금요일)을 진행하는 피아니스트 김용배(전 예술의전당 사장), ‘토요 콘서트’(셋째주 토요일)의 지휘자 정치용(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11시 콘서트'(둘째주 목요일)의 비올라 연주자 김상진(연세대 교수) 등 해설 음악회의 ‘안방마님’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음악회들은 예술의전당에서 가장 먼저 매진되는 인기 콘서트들이다. ‘공연장은 저녁에 깨어나고 아침에는 잠든다'는 고정관념도 이들 덕분에 깨졌다. 오전 11시마다 마이크를 잡는 ’11시의 남자들’이 해설 음악회의 매력과 진행 요령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해설은 ‘애피타이저(appetizer)’다

김상진 교수는 음악회의 해설을 식욕을 돋우는 ‘애피타이저’에 비유했다. “식사에서 애피타이저는 곧이어 맛있는 요리가 나올 거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죠. 마찬가지로 해설도 멋진 음악이 조만간 흐를 것이라는 동기 유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비슷한 이유로 김용배 전 사장은 가끔씩 무대에 입장할 때 인사말을 생략한다. 거두절미하고 곧바로 작품 설명에 들어가는 것이다. “해설자가 음악보다 부각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해설자의 미덕이 아닐까요. 관객들이 음악을 즐기러 온 것이지 제 얼굴을 보기 위해 오신 건 아닐 테니까요(웃음).”

◇해설은 ‘호흡’이다

같은 해설 음악회라도 진행자가 무대에 입장하는 방식은 제각각이다. 해설과 지휘를 동시에 맡는 정치용 교수는 무대에서 떠나는 일이 드물다. 그는 “관객을 보고 말한 뒤 곧바로 뒤돌아서서 지휘봉을 잡는다”며 웃었다. 김 교수는 전반과 후반 한 차례씩 두 번 나오는 방식을 선호한다. 반면 김 전 사장은 오페라·실내악 등 장르나 성격에 따라서 최대 6번까지도 들락날락한다.

하지만 이들은 “해설 음악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흐름과 호흡”이라고 입을 모았다. 관객들의 흥미와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잡아주는 것이야말로 해설자의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김 전 사장은 “해설은 단순히 지식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산만하거나 들뜨지 않도록 관객들과 계속 호흡을 맞추는 일”이라며 “가끔은 무대 직원들이 피아노를 옮길 때 함께 나와서 음악회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해설의 관건은 덜어내는 것

이들은 짧게는 8년, 길게는 17년째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는 ‘해설의 달인들’. 이들은 해설의 핵심은 분량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우고 덜어내는 데 있다고 귀띔했다. 정 교수는 “처음엔 연필로 수첩에 가득히 적어 놓은 내용을 무대에서 쉽게 찾지 못해서 애를 먹기도 했다”면서 “진행하면 할수록 말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과 김 교수는 무대에 나올 때 아예 대본을 들고 나오지 않는다. 김 교수는 “전날 밤까지도 메모를 하지만, 공연 당일에는 무대에 들고 나오지 않는 편이 훨씬 편하고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지금도 공연 전날이면 연주 프로그램이 무대에서 생각나지 않아서 허둥거리는 악몽을 꾼다”면서 웃었다.

이들은 해설 음악회의 참다운 매력은 ‘산교육’에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어릴 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해설 음악회에 처음 왔던 관객이 시간이 흐르고 어른이 된 뒤에도 다시 찾아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