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프랑스에서 귀환한 외규장각 의궤 중 장렬왕후국장도감의궤의 한 장면. /전기병 기자

지난 2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외규장각 의궤를 담당하는 학예사 이메일로 약정서 한 통이 왔다. 발신자는 프랑스국립도서관. 외규장각 의궤 귀환 10년을 맞아 대여 합의를 갱신하는 내용인데, 이전에 없던 조항이 붙어 있었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아닌 제3자가 상업적 목적으로 의궤 사진을 이용하려면 우리에게 돈을 내야 한다”는 것. 당황한 담당자는 “우리 박물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데다 모든 소장품을 누구나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개방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답신을 보냈다.

10년 전인 2011년 4월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에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儀軌·조선 왕실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책)가 돌아왔다. ‘145년 만의 귀향'이라고 떠들썩했다. 하지만 완전한 반환이 아니었다. 5년마다 대여를 갱신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었고, 소유권은 지금도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다.

201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145년 만의 귀환, 외규장각 의궤’ 특별전 전시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이 프랑스에서 돌아온 조선왕실 의궤들을 살펴보고 있다. /조선일보 DB

지난 2016년 처음으로 ‘대여 합의’가 갱신됐고 또다시 5년이 흘렀다. 올해 귀환 10년을 맞아 지난 2월 한국과 프랑스 외교부는 ‘5년 동안 대여를 연장한다’는 합의문을 교환했다. 이후 프랑스국립도서관과 소장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 사이의 갱신 절차가 진행 중이다. 윤성용 학예연구실장은 “‘사진 사용료 조항은 합의할 수 없다'는 답신을 보낸 지 한달 만에 프랑스도서관측에서 ‘동의한다’는 회신이 왔다”며 “향후 조항을 꼼꼼히 검토하며 몇 차례 더 이메일을 주고받아야 갱신 절차가 완료될 것”이라고 했다.

학계에선 “지금이라도 외규장각 의궤의 소유권을 온전히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환이 아닌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전시와 활용에도 제약이 많다는 것.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보·보물이 될 수도 없다. 지난 2016년 국내에 있는 조선왕실 의궤가 일괄 보물로 지정됐지만 외규장각 의궤는 빠졌다. 프랑스국립도서관과 협의하지 않으면 국립중앙박물관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지난 2019년 동유럽권 최초로 폴란드에서 열린 한국 문화재 특별전에도 의궤는 프랑스 측과 협의를 거친 후에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2011년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 중 효장세자책례도감의궤(어람용) 한 장면. /연합뉴스

‘5년 단위의 갱신 가능한 대여’는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결과였다. 당시 프랑스 법률상 문화재 반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유물을 우리 수중에 돌려놓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프랑스 내부 상황이 바뀌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일성으로 “과거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빼앗아온 문화재를 반환하겠다”고 약속했고, 지난해 12월 프랑스 의회는 1892년 아보메 왕궁에서 약탈해 파리 케브랑리 박물관이 소장하던 동상 등 유물 26점을 반환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지금 서아프리카 베냉의 남부 도시 우이다에선 연말까지 반환될 문화재를 전시할 박물관 건설이 한창이다. 김문식 단국대 교수는 “프랑스 의회에서 ‘약탈 문화재를 반환하자’는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고, 실제 반환이 이뤄지는 선례가 생긴다면 지금이야말로 의궤의 소유권을 돌려받을 기회”라며 “재협상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