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미나리’가 포함된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 중에는 1960년대 후반 미국 시카고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공교롭게 두 편이나 들어 있다. 1968년 미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반전(反戰) 시위를 다룬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감독 에런 소킨)은 시종 경쾌한 ‘말의 잔치’에 가까운 법정극. 반면 22일 개봉하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감독 샤카 킹)는 핏빛 폭력으로 흥건한 ‘거리의 드라마’다. 과연 반세기 전 시카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처럼 후보작이 쏟아지는 걸까.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에서 급진적 흑인 지도자 ‘프레드 햄프턴’ 역의 대니얼 컬루야(왼쪽에서 둘째). 오늘날 흑인 차별 반대 시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1960년대 미국에서 첨예한 논란을 일으켰던 흑인 무장 단체 ‘블랙 팬서(Black Panther)’의 일리노이 지부장 ‘프레드 햄프턴’(대니얼 컬루야)의 실화에 바탕한 영화다. 햄프턴(1948~1969)은 불과 21세로 미 경찰의 총격으로 숨을 거둔 흑인 운동 지도자. 그는 마오쩌둥(毛澤東) 사상에 입각해서 점진적 개혁 노선을 비판하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강조했다. 당시 반전 운동에 넌더리를 내고 있던 미 연방수사국(FBI)은 급기야 그를 ‘미국 안보의 위협’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비폭력 운동을 다뤘던 ‘셀마’(2014)부터 급진적 흑인 운동가 맬컴 엑스의 일대기를 그렸던 ‘말콤 X’(1992)까지. 흑인 인권 운동을 다룬 영화는 그동안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작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공공연하게 혁명을 주창했던 흑인 무장 단체 지도자와 그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공권력의 정면 충돌을 다룬 것이다. ‘겟 아웃’에서 인종 차별에 생명을 위협 받는 주인공 역을 맡았던 컬루야는 이번 영화에서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악명 높은 에드가 후버 FBI 국장 역은 노배우 마틴 신(80)이 맡았다.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에서 논쟁적 주제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이 서술 방식이다. 햄프턴을 FBI에 밀고하는 정보원 윌리엄 오닐(라키스 스탠필드)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차량 절도범이었던 오닐은 범죄 혐의 기각을 대가로 블랙 팬서 내부에 잠입한다. 영화는 미국 현대사에 대한 시대물일 뿐만 아니라, 서로 속고 속이는 첩보물이자 일종의 종교극이 된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의미도 후반부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흑인의 해방을 약속했던 ‘검은 구세주(블랙 메시아)’가 햄프턴이라면, 그를 팔아넘긴 ‘유다’는 오닐인 것이다. 흑인 지도자가 핍박받는 구세주요, 오히려 공권력이 부당한 박해자라는 발상의 전환이야말로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좌고우면하는 법 없이 오로지 인종 갈등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일직선적 진행 때문에 보는 것만으로도 감정적 소진이 적지 않다. 인종 갈등이 비교적 적은 한국에서는 대중적 접점이 넓지 않다는 점도 장애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첨예한 화두인 흑인 차별 항의 시위(Black Lives Matter)의 직간접적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노매드랜드’나 ‘미나리’ 같은 강력한 경쟁작에 비해 작품상 경쟁 레이스에서 한 걸음 뒤져 있지만, 오늘날 미국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