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쉬운 언어과 매혹적인 그림. 어린이를 위한 책을 어른들이 찾고 있다. 온라인 서점 책 리뷰와 소셜미디어에선 어린이를 겨냥한 동화나 그림책을 읽고 표지 ‘인증’과 서평을 남기는 성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감동적이다” “아름답다” “위로받았다” “우리 삶 그 자체다” “울었다”는 감상이 많다. 독서의 위기 와중에도, 동화·그림책 출간 수와 판매량은 코로나 시대 1년간 늘어났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 1~2월 출간된 유아·아동용 도서는 1447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 늘어났고, 판매량은 약 20% 증가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동 출판사 관계자는 “과거엔 학부모가 먼저 읽고 아이에게 권했다면, 요즘은 자신이 읽고 싶어 어린이 책을 찾는 젊은 독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림책‘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의 한 페이지. 말을 더듬는 아이가 강에 들어가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다. 자연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 어린이 이야기를 52쪽에 담은 이 책의 구매 독자 10명 가운데 4명이 20·30세대였다. 성인 독자들은 책 속 주인공 아이의 모습에서 사회 생활과 인간 관계에 어려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응원을 얻었다. /책읽는곰

어린이 문학 작품 흥행엔 20·30대 어른들이 가담하고 있다. 지난달 출간된 동화 ‘긴긴밤’은 바다를 찾아 여행하는 코뿔소와 펭귄의 우정을 담은 144쪽의 짧은 이야기로, 초등학교 5·6학년을 위한 책이다. 1년에 1만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 대접을 받는 어린이 책 시장에서 한 달 만에 1만3000부를 판매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따르면 긴긴밤 구매 독자 절반은 아이가 있는 40대지만, 30%가 20·30대다. 일반적으로 어린이 도서 구매자의 80~90%가 40대인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2030의 호응이다.

지난 1월 출간돼 유아 분야 10주간 판매량 1위(알라딘 기준)에 오른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도 전체 독자의 38%가 2030 세대다. 캐나다 시인 조던 스콧이 쓴 자전적인 이야기에 서정적인 그림을 붙인 이 52쪽 책은, 말을 더듬는 아이가 쉼 없이 흐르는 강물과 마주하며 자신을 긍정하는 내용이다. 처음부터 성인 독자를 염두에 둔 어린이 그림책도 출간되고 있다. 시집과 에세이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박준 시인은 지난 20일 첫 그림책 ‘우리는 안녕’을 내놨다. 강아지와 새가 등장하는 시 한 편에 그림을 입힌 80쪽 분량의 책을 구매한 독자 절반이 2030 세대다.

동화 '긴긴밤'/문학동네

우리 사회에 예술성을 갖춘 창작 어린이 문학 장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1990년대 중반으로 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란 개념이 따로 없던 이전 세대는 위인전이나 세계 문학 요약본을 읽는 게 고작이었다. 김지연 아동문학평론가는 “자유롭고 폭넓게 어린이 문학 작품을 접했던 세대가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 책을 찾고 있다”며 “키덜트(어린이 취향을 가진 성인) 현상에서 보이듯 이들은 좋아했던 추억을 오래 유지하는 것을 쑥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 읽기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어린이 책은 30분~1시간만 투자하면 깊게 읽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쉽게 읽히면서도 삶에 대한 상징과 은유는 넘친다. 어른들은 어린이 이야기에서 제 모습을 찾고 의미를 부여한다. ‘긴긴밤’에서 서로 다른 존재인 코뿔소와 펭귄이 절망 앞에서도 힘을 합쳐 바다로 나아가는 여정에 감정을 이입하고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의 말을 더듬는 어린이 모습에서 사회생활에 서툰 자신을 발견하면서 치유의 과정을 함께한다. 송수연 아동문학평론가는 “어른 소설이 현실 속 있는 그대로의 모순을 드러낸다면, 어린이 소설은 동심이나 이상적인 세계의 회복을 지향한다”며 “문학 작품에서조차 각박한 현실을 확인하고 싶지 않은 젊은 독자들이 어린이 책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 그림책 '우리는 안녕'/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