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하나, 생의 절반 이상을 외국서 보낸 이가 첫 장편소설을 냈다. 그런데 배경이 조선 시대다. 작가는 프랑스에 사는 장다혜씨. 조선의 거상(巨商)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소설 ‘탄금’이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조선 제일 상인의 외동아들이 여덟 살에 실종됐다가 10년이 흐른 뒤 청년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활극을 그렸다. 흡인력 있는 서사에 품격 있는 고어와 아름다운 우리말, 그리고 다채로운 방언이 빼곡하다. 출시 한 달도 안 돼 전자책 대여·판매 업체 리디북스 소설 분야 1위에 올랐다. 온라인 메신저로 만난 작가는 “200자 원고지 1400매(408쪽) 분량을 5년간 썼다”고 했다.

늦게 출발한 소설가는 어떤 작가로 남길 원할까. “소설 속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다. 소설가 성석제 하면, 황만근(소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이 떠오르는 것처럼.”

왜 소설이었을까. 장씨는 “딱히 소설 창작법을 배운 적 없다”면서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있었다”고 말했다. 20대엔 호텔리어와 작사가로, 30대엔 여행 작가로 변신을 거듭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세계 어디서든 일하며 여행할 수 있는 호텔리어가 되고 싶어” 프랑스의 한 호텔 경영대학에 진학했다. 4년간 유럽에서 호텔리어로 일하면서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멈춘 적 없다. 한국 연예 기획사의 인정을 받아 귀국해 3년간 작사가로 활동하며 가수 이수영의 ‘눈물이 나요’, 박혜경의 ‘A Lover’s Concerto’, 이소은의 ‘사랑해요’ 등 노랫말을 지었다. 프랑스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남편과 2007년 결혼하며 주부로 쭉 해외 생활을 했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을 틈틈이 여행하며 썼던 글을 묶어 2011년과 2015년 에세이 책을 냈다.

소설 창작은 산문 쓰기와 또 다른 차원의 일. 1980년대 실종된 프랑스 아이가 몇 년 뒤 집에 돌아왔던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시대극을 써보겠단 욕심을 냈다.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2016년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했다. “출간보단 자기만족으로 놀이처럼 글을 썼다. 시나리오에 장면과 대사를 더하고 빼는 일을 3년간 반복했다.” 인물들의 감정을 대사와 지문에 담다 보니 비정상적으로 분량이 늘어났다. “뚱뚱해진 시나리오를 겁 없이 2년간 소설로 바꿨다. 내가 만든 인물들에게 구체적인 삶을 부여하고, 왜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선 소설이란 형태가 필요했다.” 그는 “인물을 창조하고, 그의 입장에서 행동을 변호하는 소설 쓰기의 재미와 쾌감은 그 어떤 글쓰기보다 컸다”고 했다.

야살스럽다(되바라진 데가 있다), 시망스럽다(짓궂은 데가 있다), 걸오하다(성질이 거칠고 사납다) 등 한글·한문 어휘들이 다양하게 구사돼 입체적인 글맛을 살린다. “‘토지'나 ‘객주’ 등 대하소설이나 고전을 읽으면서 발견한 단어들이 재미있었다. 그런 단어나 방언을 문장과 함께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 단어장 분량이 중편 소설책 한 권 정도라고 했다.

장씨는 다음 작품으로 조선 시대 판소리 명창 이날치를 쓰고 있다. 자료가 많지 않아 탄생과 고향 정보만 가지고 소설을 구성하고 있다고 했다. “소리꾼이 되기 전 줄꾼이던 이날치다. 젊은 날 사당패에서 줄을 타는데 소리에 목말라 있는 인물이다. 기대해달라.”

조선의 거상(巨商)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소설 ‘탄금’이다. 미술품을 거래하는 조선 제일 상인의 외동아들이 여덟 살에 실종됐다가 10년이 흐른 뒤 청년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활극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