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군자마을의 후조당 사랑채에서 광산김씨 예안파 후손들이 모여 1년에 한 번 지내는 향사(享祀)를 위해 분정(역할을 분담하는 것)을 하고 있다. /사진작가 이동춘

경북 안동에 군자마을이 있다. 500~600년 전부터 광산 김씨가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조선시대 안동 부사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다녀간 뒤 “이 마을에는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후조당' 종택부터 ‘탁청정' ‘읍청정' 같은 고택·정자가 즐비하고,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 고문서(보물 1018호) 등 문화재가 쏟아져 나온 곳이다.

안동 군자마을에 있는 광산김씨 예안파 종택 후조당의 육간 대청. /사진작가 이동춘

수백 년 세월을 간직한 안동의 고택과 사람 이야기를 한 권에 담은 사진집이 나왔다. 한국유네스코 안동협회가 펴낸 ‘고택문화유산 안동’은 사진작가 이동춘씨가 15년간 안동 고택 107곳을 방문해 찍은 사진 260장을 시원하게 펼쳤다. 여기에 한옥 연구자인 배영동·유영모·류수현이 필진으로 참여해 후손 61명을 인터뷰한 뒤 기록을 보탰다.

안동김씨의 터전인 소산마을 풍경. /사진작가 이동춘
소산마을 만휴정에 눈이 쌓인 모습. /사진작가 이동춘
우렁골 체화정(보물 2051호)의 온돌방 창호. /사진작가 이동춘

임진왜란 이전에 지은 한옥에서 지금도 사람이 산다. 눈발 날리는 사랑채, 봄꽃 뒤덮인 팔작지붕도 아름답지만, 도포 자락 휘두르며 고택 계단을 내려가는 어르신 뒷모습에 시선이 더 오래 머문다. 충(忠)과 효(孝)를 가장 큰 삶의 가치로 여겼던 선비정신,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오미마을 일화 등 시대와 사람 이야기가 빼곡하다.

도산서원 앞에 모인 후손들. /사진작가 이동춘
병산서원 향사를 위해 모인 후손들. /사진작가 이동춘

이동춘씨는 특히 “검제마을 안동장씨 경당종택을 찾았을 때가 기억난다”고 했다. “폐 끼치지 않으려고 식사 시간을 피해 오후 3시쯤 도착했다.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종부가 소쿠리를 들고 밭으로 가시더니 금세 나물을 캐서 정성스러운 밥상을 차려 오셨다. 감동하는 내게 종손은 ‘종가의 미덕은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제사를 모시고 손님을 접대함)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이씨는 “데면데면한 것 같지만 정 넘치는 안동의 매력, 500년 된 대청마루가 갖고 있는 세월의 울림이 사진으로 전해지면 좋겠다”고 했다.

퇴계 이황이 태어난 노송정의 최정숙 종부. /사진작가 이동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