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e Mooney 페미니즘의 아이콘, 미국 작가 리베카 솔닛.

“우리는 학교가 문을 닫고 아이들이 집에 있는 코로나 재확산 위기에 처해 있다. 이성애 가정에서 돌봄노동에 대한 부담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부과되었고, 남성들 틈에서 꿋꿋이 버티며 일해 온 여성의 능력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렇지만 불평등은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미국 여성 운동가이자 작가인 리베카 솔닛(59)은 본지 이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라는 재난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먼저 위기에 처한다”는 지적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2008년 에세이 ‘설명하는 남자'를 통해 “오빠가 좀 아는데~”라며 여자를 가르치려는 남자를 비꼬는 단어인 ‘맨스플레인(man+explain)’을 전 세계에 유행시키며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2010년 뉴욕타임스는 ‘맨스플레인’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한국에선 거리 두기 없이 일하는 콜센터 직원 등 많은 여성이 코로나 사태의 희생양이 됐다.

“(코로나보다) 불평등이 더 큰 문제다. 여성 일자리가 남성만큼 좋았다면,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만큼 또렷이 들렸다면, 여성을 보호하는 일이 남성을 보호하는 것만큼 중요하게 다뤄졌다면, 아이와 가정을 돌보는 일이 여성의 일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일로 여겨졌다면…. 따라서 해결책은 팬데믹 상황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이 계속 노력해 왔던 것, 여성이 중시되고 모두 평등하고 권리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거다.”

“기존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면 어떤 방식일까”묻자 솔닛은“단기간 수익을 내야 한다는 생각, 공동체에 대한 무책임이 기후와 지구, 수많은 인간과 다른 종(種)을 죽이고 있다. 인권과 자연 보호에 대한 감시의 눈으로 생산과 소비, 수익을 규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페미니즘은 어떤 상황과 맞닥뜨렸나? 신보수주의처럼 새로운 가부장제도 등장할까?

“미국에선 남성성(masculinity)에 대해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강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 두기를 거부하는 것을 남성적이라고 여긴다. 책임감이나 타인과 연결에서 자유로운 것을 남성답다고 여기다 보니 감염이나 질병 확산에 대한 팩트를 부인하거나 현재의 위험을 왜곡하는 바보들이 나온다. 물론 남성성에는 많은 형태가 있다. 미국의 대선 레이스는 강력한 부양과 보호를 남성성이라 여기는 - 때로 가부장적인 - 바이든과 모임이나 영업장 열기, 마스크 쓰지 않기를 부추겨 팬데믹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무력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 트럼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여성들은 어떤 활동을 했나.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데 앞장섰다. 나는 900명 넘는 회원 대부분이 아시아계 여성이며, 아시아계 여성들이 이끌고 있는 ‘바느질하는 아줌마 모임(Auntie Sewing Squad)’ 회원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이 모임은 교도소 출소자, 이민자 출신 농장 노동자, 미국 원주민 등 취약 계층을 위해 11만5000개가 넘는 천 마스크를 집에서 만들었다. 마스크를 공급하며 관대하게 낯선 이들을 돌보는 것과 마스크 쓰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의 대비가 아주 드라마틱하다.”

- 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온라인 문화가 강화되면서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지난봄 한국에서는 남성들이 가출한 10대 여성들을 협박해 나체 사진 등을 받아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거래하는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줬다.

“오, 세상에. 그냥 가부장제와 여성과 소녀들을 해치려는 그 욕망을 완전히 박살내 버릴 수 없을까? 너무 추하다. 대체 누가 그런 짓을 하며 기분 좋다 느끼는 걸까?”

리베카 솔닛 지음, 김정아 옮김, 반비

- 여러 분야에서 ‘뉴 노멀’을 이야기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뉴 노멀’은?

“‘뉴 노멀'이라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코 다시 2020년 1월 1일이 될 수 없다는 건 안다. 영원히 이 위기 속에 있지는 않겠지만,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문 닫은 영업점들, 붕괴된 경제 같은 건 비극이다. 그렇지만 어떤 부분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가 얼마나 바빴는가, 과도하게 소비하려고 지나치게 생산했다는 것, 창 밖을 내다보기 위해, 혹은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 여기 저기 옮겨다니며 허둥지둥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당신은 ‘걷기의 인문학' 같은 책에서 시위나 집회 등 거리의 집단행동이 우리 자신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다뤘다. 비대면 시대에 재난이나 불의에 대응하는 원동력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우리의 힘은 언제나 서로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데서 발발한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 같은 저항이 시위가 일어난 도시의 확진자 수를 늘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싶다. 거리의 집단행동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한국에 소개된 아일랜드 여행기 ‘마음의 발걸음’(반비)에 여행의 충족감에 대해 썼다. 여행할 수 있는 자유가 사라진 시대, 그 충족감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팬데믹의 가장 충격적인 점은 사람들 각자의 경험이 무척 다르다는 것이다. 이동 제한이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국내 여행을 좋은 생각이라 하기엔 바이러스가 심하게 퍼진 곳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많은 이가 예전보다 훨씬 국내 여행에 집중한다. 공원, 거리, 수로(水路) 같은 바로 대문 밖 세계를 더 주의 깊게 탐험한다. 이 책 뿐 아니라 여러 책에서 평생 살았던 곳에서도 항상 더 발견할 것이 있다는 순수하고 무궁무진한 감각을 북돋으려 했다.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더 조심해야 하지만 동물, 식물, 날씨, 빛, 하늘과는 그렇지 않다. 이 팬데믹에서 많은 사람이 집, 가족, 친구, 우리 자신처럼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에서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 당신 삶의 가장 큰 변화는?

“수년 동안 나는 ‘부정맥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농담을 해 왔다. 생각하기, 글쓰기, 삶을 증진시키는 건강한 리듬을 찾았다고 생각할 때마다 비행기에 올라 그 리듬을 모두 깨뜨려버리고 다시 시작하길 반복해 왔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 머무르는 일은 매우 평화롭고 도움이 되었다. 드물게 운이 좋았는데, 내 작업이 계속되었고 집에 있는 생활이 만족스러웠으며 내가 사는 샌프란시스코가 팬데믹에 매우 선견지명이 있고 신중했기 때문이다.”

- 팬데믹이라는 재난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어디에서일까.

“화석연료 산업의 붕괴 심화라는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전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낡은 변명을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신속하고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다는 증거에서 찾을 수 있다. 의료 노동자들과 다른 최전방 노동자들을 포함한 사람들의 관용과 용기, 타인에 대한 돌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위기에 정말 신속하게 대처한 과학자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