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베트남전쟁 중에 태어난 캐나다 소설가 킴 투이(52)는 열 살 때 공산 정권의 탄압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바다로 탈출했다. ‘보트 피플’이 된 그는 망망대해를 떠돌다 간신히 말레이시아 난민 수용소에 도착했다. 200명을 위해 준비된 수용소는 순식간에 2000명의 사람으로 가득 찼다.

킴 투이는‘인생이라는 싸움에서는 슬퍼하면 진다’라는 베트남 속담을 인용했다. 그는“인간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자전적 소설 ‘루’에서 그는 난민 수용소 흙바닥 위에서도 아이들을 위해 영어 교실을 열었던 어머니를 회상한다. 배우는 것이라곤 ‘내가 타고온 배의 번호는 KGO338입니다’ 같은 문장뿐이었지만 아이들은 수업을 빼먹지 않았다. ‘매일 밤 기울어진 바닥 위로 우리의 꿈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자식들의 미래를 위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루’는 캐나다 퀘벡과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며 한국어를 포함해 25개 언어로 번역됐다. 킴 투이는 무라카미 하루키 등과 함께 2018년 노벨 문학상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뉴 아카데미문학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올해 초 열린 뮌헨안보회의에서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가로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대담했다. 다음 달 2일부터 열리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게 된 그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킴 투이는 “베트남전 중에는 깊은 구덩이나 지뢰처럼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고 했다. “저희 어머니는 항상 ‘혹시 구덩이에 빠지게 되면 하늘을 올려 보라’고 하셨어요. 생의 마지막 순간을 껌껌한 굴이 아니라 푸른 하늘로 기억하라면서요.”

‘루’는 베트남어로 ‘자장가’라는 뜻이다. 베트남전부터 난민 수용소, 캐나다 퀘벡에서 자리 잡기까지의 이야기가 자장가처럼 은은하게 흐른다. 작가는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포착한 삶의 아름다움을 전하려 했다.

그는 “아름다움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라고 했다. “베트남전에서 네이팜탄 폭격을 피해 나체로 뛰어가던 소녀의 사진이 유명해진 이유는 그 사진이 잔혹하면서도 아름답기 때문이에요. 팔 벌리고 뛰어가는 모습은 종교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죠. 아름다움은 사람의 시선을 붙잡고, 결국엔 그 소녀가 겪는 공포까지도 이해하게 만들죠.”

대학에서 번역학과 법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어 고향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그는 “캐나다에선 베트남전쟁이라 불렀지만, 베트남 내부에선 ‘미국전쟁’이라 불렀다”면서 “우리는 베트남의 시각이 담긴 역사를 남길 수 없었다”고 했다. “특히 보트 피플은 캐나다의 역사도 아니고, 베트남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역사이기 때문에 더욱 이야기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낳고서는 캐나다에서 베트남 식당을 열었다. 부족한 요리 실력 때문에 하루에 한 가지 메뉴만 팔았는데 이색 식당으로 소문이 났다. “매일 새벽 1~2시에 끝나 집에 돌아올 때면 빨간불을 기다리는 잠시를 못 참고 깜빡 졸았어요. 이러다 사고 나겠다 싶어, 잠을 깨려고 신호를 기다릴 때마다 노트에 짧은 글을 끼적였어요.” 5년 뒤 그는 레스토랑 문을 닫고 그동안 써왔던 메모를 묶어 소설 ‘루’로 펴냈다.

킴 투이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을 사랑했고,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 글을 쓸 때 지녀야 할 정확함이나 인내심을 배웠다”고 했다. “저는 인생이 폭포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저 유리잔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떨어지는 좋은 것들을 담기만 하면 되죠. 제가 삶에서 본 아름다운 것들을 글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서울국제작가축제는 킴 투이를 비롯해 국내외 작가 25명과의 만남을 실시간 중계한다. 다음 달 2일부터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행사는 축제 홈페이지(www.siwf.or.kr)를 통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