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캐모마일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흰 꽃송이들의 집합지는 마스크. 얼굴에 덮어쓰면 싱그러운 꽃내음이 밀려들 것 같은 이 마스크는 영국 설치미술가 에스텔 울리가 직접 만들어 소셜미디어 ‘#메트 마스크 챌린지’에 올린 것이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하 메트)이 코로나로 미술관에 오지 못하는 관람객들을 위해 메트가 소장한 유물·명화 중 영감을 주는 걸 골라 자기만의 수제 마스크를 만드는 행사다. 드라마 ‘오피스’ 배우 민디 캘링 등 유명인들이 동참하면서 일본 우키요에(浮世繪) 대가 호쿠사이의 판화를 그려넣은 마스크, 쿠킹 포일이나 병뚜껑으로 만든 마스크 등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 온갖 마스크들이 올라오고 있다.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 기념품점에선 반 고흐의 ‘해바라기’ 마스크가 인기다. 매대에 올라오는 순간 완판된다. ‘꽃 그림의 대가’ 암브로시우스 보스카르트의 정물화를 담은 마스크도 인기 만점.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베스트셀러는 미 인상주의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마스크와 칸딘스키의 ‘코사크인’ 마스크이고,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은 대표작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을 넣은 마스크를 내놨다.
세계 미술관들의 마스크 사랑이 뜨겁다. 장당 평균 10달러(약 1만2000원) 안팎으로 비싸지만 모두가 같은 마스크를 끼는 시대에 남과 다른 걸 찾는 욕구를 채워준다. 궁극적으론 미술관 운영에 도움이 된다. 내셔널갤러리 구매 담당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장 보러 갔는데 하나같이 똑같은 마스크를 끼고 돌아다녔다. 정말 이상한 광경이었다”며 “요즘 기념품점 인기 상품은 우산, 열쇠고리, 연필이 아니다. 미술관 소장 걸작이 담긴 ‘예술 마스크’”라고 했다.
2주 전 재개관한 메트도 온라인에서 모네와 반 고흐의 꽃 그림을 담은 마스크를 팔고 있다. 미 사진작가 아널드 이글이 1940년대 뉴욕을 촬영한 ‘펜실베이니아 역’과 석판화가 아돌프 덴이 같은 시기 봄날의 센트럴파크를 그린 마스크도 눈길을 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은 멕시코의 유명 미디어아트 작가 카를로스 아모랄레스의 전시가 코로나로 취소되자 마스크 디자인을 요청했다. 흰 바탕에 검은 나방이 그려진 이 마스크는 사람이 숨을 쉬거나 말을 하면 나방이 날갯짓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장에 15유로(약 2만1000원)로, 수익금은 멕시코 길거리에서 코로나에 무방비로 노출된 구두 수선공이나 환경미화원, 노점상들이 쓸 마스크를 만드는 데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