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즘

헤더 라드케 지음|박다솜 옮김|RHK|400쪽|2만2000원

“아프리카 내륙에서 막 도착한 호텐토트 비너스: 이 나라에 전시된 최고의 경이.” 1810년 영국 런던의 길거리엔 남아프리카 코이족 여성 세라 바트먼의 커다랗고 둥근 엉덩이를 강조한 포스터가 나붙었다. 바트먼의 엉덩이를 두 눈으로 보기 위해 사람들은 공연장으로 몰려들었고, 돈을 더 내면 직접 만져볼 수도 있었다. 관객들은 그의 엉덩이가 진짜인지 확인하기 위해 꼬집어 보거나 우산으로 찔러봤다.

엉덩이는 언제부터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됐을까.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박물관 큐레이터인 저자는 바트먼이 영국에 도착한 이래로, 서구 백인들에게 엉덩이는 이국적이고 에로틱한 이미지를 갖게 됐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지난 두 세기 동안 패션·인종·과학·대중문화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미국과 서유럽에서 엉덩이를 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엉덩이에 대한 탐구는 저자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0대 때는 친구들보다 큰 엉덩이를 숨기려 애썼고, 성인이 되고부터는 길거리나 직장에서 희롱의 대상이 됐다. 남들에겐 아주 잘 보이지만 정작 본인에겐 낯선 부위였다. 자신이 느꼈던 수치심의 근원을 파헤쳐 가던 저자는 엉덩이가 품고 있는 억압과 차별, 집착과 저항의 역사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