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를 존경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나는 오랫동안 JP에 대해 비판적인 편이었다. 다만 이한동 전 총리실에서 근무하던 30대 때, JP의 행정에 대해 ‘전설’처럼 전해오는 수많은 뒷얘기를 들으면서 ‘JP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기는 했다.

최근 정세균 전 총리와 차를 마시다가 “‘정치는 허업’이라는 JP의 말을 듣고 가슴이 참 시렸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공감하게 된 것은 나도 이제 50대 중반이기 때문일 게다. 더 늦기 전에 JP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진 것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를 보며 ‘과연 JP였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어서였다.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반대파의 공격을 받고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을 남기고 공화당을 떠났던 JP, ‘만약 요즘 여당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자 ‘김종필·오히라 협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정계 복귀를 하면서 ‘유신 잔당’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발끈했던 그가 “유신 잔당이 아니라 유신 본당”이라고 한 얘기는 오랫동안 나의 기억에 남았다. 그랬던 그가 유언처럼 남긴 ‘남아있는 그대들에게’(스노우폭스북스)를 읽어 내려가면서, 이유 없이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영친왕의 죽음을 회상하는 부분에서는 역사의 슬픔이 짙게 느껴졌다. “영친왕은 국내외의 계산 밝은 사람들에 의해서 희생된 역사의 제물이었습니다.”

시대의 2인자, 청산해야 하는 3김의 한 축, 그리고 지역 분할 구도의 주인공이 바로 JP다. 그렇지만 그도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생각한 것 같고, 언론의 역할을 이해한 것 같고, 무엇보다도 다양성에 대한 꿈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명이 성공하고 99명이 실패한 나라가 아니라 100명 모두 행복한 나라”라는 구절을 읽고 있자니 그가 왜 ‘개혁적 보수’라는 말을 썼는지 좀 이해할 것 같다.

한국의 보수 중 가장 유머가 넘쳤던 사람으로는 YS와 JP가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것 같다. ‘혼돈의 시대, 무엇이 진정한 보수인가’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내 인생에 JP의 책을 읽는 일이 다 벌어졌다. 좋든 싫든, 그가 지금의 한국을 만든 사람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존경은 못 해도, 존중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석훈 경제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