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감 중독 사회

안도 슌스케 지음|송지현 옮김|또다른 우주|160쪽|1만5000원


2020년 일본에서 20대 여성 프로레슬러 기무라 하나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악성 댓글 때문이었다. 기무라는 넷플릭스 짝짓기 프로그램 출연 당시 자신이 아끼는 유니폼을 실수로 망가뜨린 다른 출연자에게 크게 화를 내 네티즌들의 분노를 샀다. 이후 기무라의 소셜 미디어 계정은 그를 비난하는 댓글로 넘쳐났다.

일본의 분노 관리 전문가로 ‘당신의 분노는 무기가 된다’ 등 전 세계 70만부 팔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댓글을 쓴 사람들은 ‘네가 틀렸다는 걸, 알려주고 말겠어’라는 사명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공격하는 측에는 그 나름의 이유, 그 나름의 정의(正義)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사회 통념상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 디지털 크라이시스 종합연구소의 2020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 악플 때문에 매일 약 3건의 자살·자해 등의 사건이 발생한다. 저자는 네티즌들이 분노에 차 타인을 부도덕하다며 공격하는 일이 빈번한 이유를 ‘정의감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정의감을 칼처럼 사용하며, 정의라는 미명 아래 증오의 대상을 처단한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보편화되면서 온라인에서만 접할 뿐 실제로는 만날 일 없는 타인들을 이웃처럼 가까이 있는 존재로 여겨 간섭하려는 세태가 나타났고,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개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정의감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일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것은 보이는 것에 현혹돼 판단을 흐리지 말라는 뜻. 그러나 정의감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맹목적(盲目的)으로 자신의 정의만 추종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실제로 일본에서는 팬데믹 초기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지역의 번호판을 단 자동차에 “어서 돌아가라”는 항의 메모를 붙이거나, 소셜미디어에 여행 사진을 올린 이들에게 과도한 악플 세례를 퍼붓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처럼 전 국민이 ‘풍기단속반’이 되어 타인을 과도하게 감시하고 비판하는 행태에 대해 저자는 묻는다. “악플 릴레이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격렬하게 타오르지만, 그 불꽃은 곧 꺼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렇게 쉽게 잊히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정의는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금방 잊혀서도 안 되지만, 지금은 정의감이 쉽게 생겨나고 눈 깜짝할 새 소비되기를 반복하는 시대라는 것. 저자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믿음(core belief)’에 어긋난 행위를 ‘적대적 행위’라 여기며 ‘정의에 어긋난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일을 겪을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 방어 감정인 분노가 생겨난다. 종교, 정치색, 윤리관 등과 같은 ‘핵심 믿음’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정의의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정의가 절대적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내면에 분노가 많은 사람이 정의감을 느낄 때 그 분노는 ‘마녀사냥’이 된다. 분노의 감정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성찰하기에 앞서 발산할 곳을 찾기 때문”이라 말한다. 이런 이들은 공권력을 대신해 판결을 내리고 처벌하려 나서기도 한다. 일부 네티즌이 자신과 정치색이 다른 이들의 신상을 털고, 이른바 ‘좌표’를 찍어 인터넷에 게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에서도 한 고위 지도층 인사가 이른바 ‘정치 댓글’을 작성했다는 의혹을 받은 국가기관 소속 직원의 거주지를 자기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쉽게 정의감에 중독되는가? 저자는 “정의를 내세워 화내는 사람 중에서는 고독한 사람이 많다. 고독감을 채우고 세상에 참여하는 방식이 남에게 시비 거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동조압력(同調壓力), 즉 집단 내에서 다수 의견에 따르라는 암묵적 압박에 약하다는 특성도 있다. ‘셀럽’의 사치스러운 생활이나 화려한 이성 관계에 관심을 기울이며 비난하는 이들은 질투심을 정의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 뉴스에 악성 댓글을 다는 이들은 그 댓글이 뉴스에 보도된 당사자에게 가 닿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댓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의롭다’고 승인받길 원하는 것이다.”

분노를 정의로 착각해 칼처럼 휘두르게 되는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빅 퀘스천’을 해답으로 제시한다. 자신의 분노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나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몸과 정신에도 건전한지를 물어보라는 것이다. “분노가 향하는 방향대로 행동했더니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몸이 지쳤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쉬운 언어로 썼지만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책. 정의는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지만 참교육’을 시키고 ‘나락’으로 보내겠다며 불확실한 정보로 타인을 공격하고, 업장을 망하게 하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