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도서관은 살아 있다’ 저자 박기숙씨. 필명 ‘도서관 여행자’로 활동하는 그는 2001년부터 전 세계 100곳 이상의 도서관을 방문했다. /박상훈 기자

“구글은 1000만개의 철 지난 정보를 주지만, 도서관 사서는 업데이트된 정보를 준다.” 인터넷 검색이 보편화된 이후 사서는 항상 ‘사라질 직업’ 리스트의 상위권을 차지한다. 그러나 오히려 사서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도 있다. 미국 오렌지카운티 공공도서관에서 8년간 근무한 사서 출신이자, 전 세계 도서관 100여 곳을 여행하며 소셜미디어에 도서관 탐방기를 남겨온 박기숙(51)씨다. “미국에선 사서가 책을 통해 지역 주민과 소통하는 역할을 하죠.” 숙명여대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미국 시라큐스대로 ‘도서관 유학’을 떠난 그. 최근 외국과 한국 도서관의 차이를 조명한 ‘도서관은 살아있다’를 펴낸 박씨를 만나 디지털 시대 사서의 역할과 ‘좋은 도서관’의 조건에 대해 들었다.

미국 도서관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미국 공공 도서관의 사서들은 대출·반납 데스크 외에도 일정 시간 이상 이용자들과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참고 데스크’에 대기해야 한다. 이 ‘독자 상담’은 특히 지역 노인들의 이용 빈도가 높아, 도서관이 복지 기능을 분담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인문학 강좌나 문화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도서관들이 많지만, 그만큼 주민들과의 소통 시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정보를 얻지만, 그는 그럼에도 사서의 역할이 커졌다고 말한다. 디지털 세계에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모으고, 이용자 특성에 맞게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졌기 때문. “최근엔 노인을 비롯한 정보 소외 계층의 재사회화 교육이나 취업 교육 등도 디지털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요. 이처럼 질문을 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에선 정보 제공자의 역할이 중요하죠.” 팬데믹 이후 디지털 자료의 수가 늘어난 점 역시 사서가 더욱 필요해진 이유 중 하나라는 것.

핀란드 헬싱키 오디 도서관에서 최신 디지털 기기들을 사용하는 시민들의 모습(왼쪽). 이 도서관은 어린이용 책과 성인용 책이 섞여 있어, 어른과 아이가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서 어울리게 된다(가운데). 이곳 3층엔 책장을 밀어 비밀 공간처럼 들어갈 수 있는 '스토리룸'이 있다. 오른쪽 사진은 스토리룸에서 책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모습. /EPA 연합뉴스·오디 페이스북·Andrey Shadrin

책엔 전 세계의 도서관 60여 곳이 소개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그가 꼽는 최고는 핀란드 헬싱키의 ‘오디 도서관’이다. 이곳의 특징은 열람 공간 외에 ‘창작 공간’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이곳에서 재봉틀을 돌리기도 하고, 악기를 연주하기도, 부모와 자녀가 함께 게임을 하기도 한다. “도서관은 책만 보는 곳이 아니라, ‘도시의 거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도서관에 오다 보면, 자연스럽게 책과도 가까워지죠.”

다세대주택 여러 동을 개조해 만든 서울 은평구 '구산동도서관마을'의 내부 모습. 2015년 준공된 이 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2019년 전국 도서관 운영평가'에서 장관상을 수상했다. /조인원 기자

미국에 거주하는 그는 주기적으로 한국 도서관 여행을 온다. 올해 입국하자마자 찾은 곳은 서울 은평구의 ‘구산동도서관마을’이다. ”도서관 내 만화, 그래픽 창작 공간뿐 아니라 전시 공간까지 마련돼 있어 주민들끼리 창작물을 공유할 수 있죠.”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느티나무도서관’도 최고 도서관 중 한 곳으로 꼽았다. “자기 취향이나 고민을 적어두면 사서들이 책을 직접 추천해준다는 점에서, 모범적인 사서 시스템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다른 좋은 도서관에 대해 물어보셨는데, ’위대한 도서관은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문헌정보학의 ‘격언’으로 대신 답을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