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지 못했는데,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는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은 한 칼럼에서 애정 어린 어투로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과학책”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관장은 ‘종의 기원’ 대신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리잼)를 권하는데, 후자라면 나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180여 년 전에 출간된, 번역본 기준으로 900쪽이 넘어가는 분량인데도 아주 술술 읽힌다. 과학 고전임을 의식하지 않고, 여행 에세이라 여기고 펼쳐도 좋을 정도다.

사실 호기심 많고 지적인 20대 청년이 5년 동안 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며 쓴 일기가 재미없으면 이상하다. 지진과 쓰나미, 식인 풍습을 설명하는 원주민과 나눈 대화, 구리 광산 광부들의 극도로 위험한 삶, 조난당한 선원, 인광(燐光)으로 빛나는 밤바다, 뒷다리를 쳐든 채 꽁꽁 얼어 죽은 말 등등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게다가 다윈은 글을 무척 잘 썼다. 읽다 보면 저자의 초상이 점점 뚜렷해지고, 거기에 깊은 호감이 생긴다. 그는 감탄을 구체적으로 잘 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기쁘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유머 감각도 있다. 젠체하지 않고, 주눅 들지도 않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노예제에 거듭 분노하고, 처음 보는 동식물을 연구한다.

그리고 물론, 진화론이라는 위대한 아이디어의 싹이 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가기 전에 이미 다윈은 소의 한 품종이 가뭄에 매우 불리해지는 현상을 상세히 기록했다. 다른 소들은 나뭇가지를 뜯어먹고 연명할 수 있지만 문제의 품종은 입술 구조가 긴 풀을 먹는 데에만 적합했던 것. 옆에서 ‘적자생존’이라고 속삭여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는 나한테는 여행 충동을 가장 불러일으킨 책이기도 하다. 다윈은 외딴곳에서 대자연을 보며 얻는 장엄한 감동에 대해 썼다. 파타고니아 평원, 바다로 흘러내리는 빙하, 남반구의 별밤. 내가, 어쩌면 현대인 모두가, 놓치고 사는 게 많다는 생각을 한다.

장강명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