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을 읽고 시인의 약력을 읽고 시인의 말을 읽고 목차를 읽고 첫 시집을 읽는다. 미치도록 기쁜 시간이다. 한 개인이 자기 방식으로 입을 열어 자기 어법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적어 내려간 세계. 다른 세계의 쪽문 하나가 활짝 열리고, 열린 문으로 빛이 쏟아진다. 보이는 것이 없어서 모든 걸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문이다.”

김소연 시인은 산문집 ‘어금니 깨물기’(마음산책)에서 어떤 시인의 첫 시집을 읽는 일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의 서재 한 귀퉁이에는 구입해두고 읽어보지 못한 첫 시집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할 일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시시하기 짝이 없는 오후를 보내며 집 안을 서성이는 어느 날, 한 권을 꺼내어 소파로 가서 눕는다”고 합니다.

모든 ‘처음’은 서툴지만, 날것이라 가능한 선연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것도 ‘처음’이죠. “어떤 책을 출간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번번이 “’첫 시집’을 출간하고 싶다”고 답한다는 김 시인의 마음이 그래서 이해가 됩니다. “여섯 번째 시집을 출간하겠다는 마음으로는 만나기 어려운 성정 속에 내가 놓여 있기를 바란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소연 시인의 첫 시집 ‘극에 달하다’(1996)를 펼쳐봅니다. 시인의 언어는 지금보다 날이 서 있고, 첫 시집을 낸 20대만이 뱉어낼 수 있는 결기로 꿈틀댑니다. “이불 가게를 지날 때 묻는다/새 이불을 덮듯 너를 찾으면 안 되냐/새 이불을 덮어 상쾌하듯/너를 덮으면 안 되냐/건널목에 서 있을 때 나는 묻는다/파란 불. 내 마음에 켜진 새파란 불빛과/길 건너의 오히려 낯익은 세계를 너는 반가워하느냐”(‘누구나 그렇다는’ 중에서)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