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포토리노 /아도니스 제공

“가족은 우리가 번성하는 토양.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한 성장할 수 없는 토양이다.”

최근 국내 출간된 프랑스 소설 ‘열일곱 살’의 저자 에릭 포토리노(62)가 가족에 대해 내린 정의다. 2018년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 ‘공쿠르상’ 후보에 오르며 호평받은 이 소설은 노모의 충격 고백으로 시작한다. 반평생 비밀로 간직해온 출산 사실을 아들에게 털어놓은 것. 이 고백으로 아들은 생부의 존재를 몰랐던 자신의 과거에 갑자기 접속하고 뿌리를 찾아 헤맨다.

저자는 프랑스 유력지 르몽드에서 탐사 보도 기자, 편집국장, 사장까지 지낸 언론인. 저명인사인데 상처 많은 개인사를 들춰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1991년 ‘로셸’로 소설가로 데뷔한 뒤 줄곧 자전적 소설을 써왔다. 그는 열일곱 살 때 모로코 유대인인 생부의 존재를 알게 됐다.

“모호한 정체성이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키웠다. 문학을 통해 내 기원을 밝히려고 했다.” 이메일로 만난 포토리노가 기자에서 소설가로 영역을 확장한 이유를 말했다. 그는 “문학은 기사나 탐사가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사실을 추구한다. 소설가는 픽션을 통해 현실의 일면을 들어 올린다”고 했다. 그의 장점은 단문과 담백한 문장으로 독자의 몰입력을 높인다는 점. “심각하고 무거운 사안을 표할 때는 가벼운 펜을 들어야 한다. 너무 많은 어휘로 버겁지 않아야 한다. 경쾌함은 예법이다.”

에릭 포토리노

기자·소설가와 함께 인생의 삼각 편대를 형성하는 하나는 사이클이다. 자전거에 빠져 마흔에 사이클 대회 ‘미디 리브르 그랑프리’에도 출전했다. ‘프랑스판 김훈’을 떠올리게 한다. “이탈리아 작가 말라파르테가 말했듯 자전거는 몸 밖의 골격이다. 페달을 밟는 것은 유연성, 숨결, 힘, 즉흥적인 방향 전환을 뒤섞는 글쓰기와 비슷하다.”

그는 2011년 르몽드를 관둔 뒤 주간지 ‘Le1′, 계간지 ‘Zadig’와 ‘Legende’ 등 대안 매체를 창간해 미디어 실험을 하고 있다. 예컨대 ‘Le1′은 예술가, 철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필자로 참여해 한 주제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광고 없이 오로지 구독료로 운영되는데 최근 400호를 선보였다. “비결이라면 독자에게 양질의 엄밀함과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 디지털의 범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영상의 시대에 소설 쓰고 잡지 만드는 그에게 물었다. 여전히 텍스트가 중요한 이유가 뭘까. “텍스트는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반영이 아니라.”


※ 아래는 일문일답

-’열일곱 살’은 생부의 흔적을 찾아 따라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당신은 가족사와 관련된 자전적 이야기를 줄곧 써왔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대중에게 꺼낼 결심을 어떻게 한 건가.

“나는 1960년 프랑스인 어머니와, 열일곱 살 때까지 사람들이 내게 존재를 숨겼던 모로코의 유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내 성은 튀니지 출신 프랑스인 양부(養父)의 성이다. 이런 모호한 정체성이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을 키웠다. 문학을 통해 내 기원을 밝히려고 시도했다.”

아도니스 제공

-’열일곱 살’의 주인공은 당신과 이름이 같다. 독자들은 당신 이야기로 생각한다. ‘사실’과 ‘픽션’의 경계에 선 가족 소설을 쓰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소설은 ‘로셸’(1991)부터 시작해 ‘코르사코프’(2004·프랑스 국영방송 소설상) ‘은밀하게 나를 사랑한 남자’(2009) ‘아버지께 드리는 질문’(2010) ‘페스를 걷는 자’(2013·유럽 빛 지중해 도서상)로 이어지는 커다란 벽화 소설의 새로운 에피소드라고 보면 된다. 상상력에 힘입어 지극히 주관적인 소설 방식으로 한 존재의 전모를 복원하려고 한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번성하는 토양, 단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한 성장할 수 없는 토양.”

-담백한 단문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는가.

“심각하고 무거운 사안을 표할 때는 가벼운 펜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어휘로 버겁지 않아야 한다. 운율, 언어의 음악성 문제이기도 하다. 경쾌함은 예법이다.”

-르몽드 기자 때는 자원, 농업, 아프리카에 관한 심층 보도를 주로 했다. 소설가가 된 계기가 있는가.

“언론은 타인에 대해 말한다. 소설로 내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기자는 팩트(fact)를 좇는 사람, 소설가는 픽션(fiction)을 만드는 사람인데.

“문학은 기사나 탐사가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사실을 추구한다. 소설가는 언론을 무기로 알리려고 하지 않는다. 픽션을 통해 현실의 일면을 들어 올린다.”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로서 사이클에 대한 글도 썼다. 자전거 타기와 글쓰기의 유사점이 뭔가.

“이탈리아 작가 말라파르테가 말했듯 자전거는 몸 밖의 골격이다. 페달을 밟는 것은 유연성, 숨결, 힘, 즉흥적인 방향 전환을 뒤섞는 글쓰기와 비슷하다. 육체적 힘듦과 직결된 인생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미디어 전문가로서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프랑스 대표 언론 ‘르몽드’ 사장까지 지낸 유명 언론인이다. 2011년 퇴사 이후 주간지 ‘Le 1′, 계간지 ‘America’, ‘Zadig’ ‘Legende’ 등 대안 매체를 창간해 미디어 실험을 하고 있다. 예컨대 ‘Le1′의 경우 시인·예술가·철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한 주제를 입체적으로 다룬다고 들었다. 광고도 주주도 없고 오로지 구독료에 의존한다던데.

“Le 1은 8주년을 맞이해 400호를 선보였다. 광고도 주주도 없이. 비결이라면 독자에게 양질의 엄밀함과 놀라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우리가 디지털의 범람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다.”

-미디어 환경이 격변하고 있다. 가짜 뉴스도 넘친다. 이 시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팩트를 인정해야 하고. 정보의 순위를 정해야 한다. 문맥을 포착해야 하고,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전망을 응원해야 한다.”

-영상의 시대가 됐다. 여전히 텍스트가 이 시대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텍스트는 반성하게 한다, 반영이 아니라.”

-인생 신조가 있는가.

“계속하기.”

-당신이 생소한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소설가로서의 내 작업에 호기심 가져줘 감사하다. 나는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말하고 있다. 인류 시초부터 끊임없이 던졌던 질문이자 우리의 영원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