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다는 착각|데번 프라이스 지음|이현 옮김|웨일북|364쪽|1만8000원

야근을 하고도 상사를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 덤으로 주어지는 일을 거절하지 못한다. 친구나 가족의 부름에 언제든지 응하며 지지와 조언을 아낌없이 준다. 깨어있는 모든 순간을 계획으로 채워넣으려고 한다. 스스로를 혹사하면서도 이 약속 저 약속을 하고 힘에 부치면 ‘나는 게을러’라고 자책한다. 항상 피곤하고 버거워하며, 자신에게 실망한다.

‘바로 내 이야기’라 생각하는 당신, 이 책을 펼쳐보시라. 사회심리학자로 시카고 로욜라대학 평생교육대학 교수인 저자는 “게으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현대사회에서 게으름처럼 보이는 것은 많은 경우 과로, 쇠약해진 정신건강, 번아웃을 부추기는 환경에 대한 투쟁의 징후라 말한다. “한계가 있고 휴식이 필요한 것은 죄악이 아니다. 피곤하고 소진된 사람들은 내면의 악(惡)인 ‘게으름’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일중독 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저자는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크게 세 가지 교리로 구성돼 있다”고 말한다. 나의 가치가 곧 생산성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과 한계를 신뢰하지 않으며, 항상 더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믿는 것이다. 미디어는 이러한 교리를 더욱 부추긴다. TV는 장애인들이 ‘도움’보다는 ‘의지’로 장애를 극복했다 묘사한다.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와 인기 유튜버들은 크리에이터가 성공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얼마나 많이 희생했는지를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은 우리가 불가능한 수준의 생산성을 바라도록 조장한다. 근무 중 8시간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한 후, 저녁에 운동하고 인스타그램에 나올 법한 근사한 집밥을 해 먹고, 꽤 괜찮은 부업을 하게 한다.”

집중을 못 하고 피곤하다 느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유독 ‘게으른’게 아니라 유독 ‘바쁜’ 사람”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저자에 따르면 ‘게으른(lazy)’이라는 영단어는 1540년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많은 어원학자가 이 말이 ‘연약한(feeble)’ 혹은 ‘약한(weak)’이라는 뜻의 중기 저지(低地) 독일어 ‘lasich’, 혹은 ‘거짓(false)’, ‘악(evil)’이라는 뜻의 고대 영단어 ‘lesu’에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일러 ‘게으르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약해서 일을 완수할 수 없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동시에 능력이 없어 도덕적으로 부패하다고 지적하는 일이기도 하다 . 저자는 근면성실한 일꾼이 신의 구원을 받는다 믿었던 청교도인들이 종교박해를 피해 미대륙으로 이주하면서 ‘게으름이라는 거짓’이 널리 확산됐다고 주장한다. 이후 노예들을 효율적으로 부리기 위해 종교적 교화를 중시하면서 ‘게으름’이 퇴치해야 할 사회적 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으름이라는 거짓’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게으르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의식적으로 빈둥대는 시간을 가지며 머리와 몸, 마음을 쉬어야 한다. 중요한 업무를 하기 전 차를 끓이고, 연필을 깎고, 동료와 수다를 떠는 것은 게으른 ‘시간 낭비’가 아니라 정신적인 ‘기어 변경’을 하기 위한 생산적 휴식 시간이다.

저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의 양을 제한하라”고 조언한다. 소셜미디어에 너무 많은 뉴스 기사를 올리는 친구는 ‘언팔’하고, 나와 뜻이 맞더라도 끊임없이 온라인 설전(舌戰)에 뛰어드는 친구는 차단하라 권한다. 친구를 차단하는 것이 무례하지 않은가 묻는 이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한밤중에 동료를 집안에 들여 정치에 대해 불평하게 할 필요는 없다. 또한 전쟁, 질병, 환경 파괴에 대한 사진으로 온종일 당신의 마음을 채워야 할 사회적 의무도 없다.”

글쓰기도 속도를 늦추고 비생산적인 상태로 자기 감정에 귀 기울이는 일도 도움이 된다. 단 철자법이나 문법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오직 자신을 위해, 매우 사적이고 자신에게 중요한 무언가에 대해 써야 한다.

직장인 3명 중 2명이 번아웃을 경험하지만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일찍 일어나 자기계발에 힘쓰는 ‘미라클 모닝’과 부지런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갓생(God+生)’ 열풍이 이는 대한민국. 안간힘을 쓰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이 책은 말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좀 쉬었다 가도 된다고. 나약하고 무능해 보이는 타인에게도 연민을 가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