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함께한 피터슨(가운데) 교수. 그는 “인생은 고통이고 악(惡)으로 더럽혀져 있지만 사랑, 믿음, 진실, 용기가 고통과 악의 접근을 막는 무기가 된다”고 했다.

2030 여성들이 좌지우지하는 출판시장에 신기하게도 구매자의 80% 이상이 남성인 책이 있습니다. 3주째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 토론토대 교수의 ‘질서 너머'입니다.

질서너머

피터슨 교수는 ‘PC’라 부르는 ‘정치적인 올바름', 특히 페미니즘에 대해 반대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놓는 것으로 명성이 높습니다. 본인들이 페미니즘의 피해자라 여기는 젊은 남성들은 피터슨의 그런 발언을 “사이다”라며 열광합니다. 꼭 반(反)페미니즘을 부르짖어서만 인기가 있는 건 아닙니다. 전작 ‘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는 “세상을 탓하기 전에 네 방부터 치우라”며 선 굵은 아버지 상을 보여줘 호응을 얻었죠. 인생은 어차피 고통인데 거기에 굴하지 말고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한 영웅이라는 것이 피터슨 교수 철학의 핵심입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라”는 조언도 엄격한 기독교 근본주의에 입각한 것인데 여성들 입장에서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죠. 논쟁적인 저자 피터슨 교수를 양지호 기자가 줌으로 인터뷰했습니다.

[反페미니즘 선봉 조던 피터슨 교수 “2030 男性이 내게 열광한다”]

피터슨 ‘현상’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참고할만한 책들도 함께 소개했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이 쓴 ‘20대 남자'(시사인)과 30대 남성 사회학자 최태섭씨가 쓴 ‘한국, 남자'(은행나무)입니다.

[20대 남성은 왜 페미니즘을 미워하나]

첫 책 ‘12가지 인생의 법칙'이 나왔을 때 제가 한 이메일 인터뷰도 참고로 링크합니다.

["세상 탓하기 전에 네 방부터 치워" 스타 교수의 버럭강의]

사회 모든 곳에선, 특히 신문 지면에선 ‘균형’이 중요하죠.

한쪽 면 톱 기사로 피터슨 인터뷰를 소개하고 다른 쪽 톱으로는 이번주에 나온 페미니즘 책 중 특히 돋보이는 책을 소개한 건 그 때문입니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인 변호사 이브 로드스키는 세 아이의 엄마인데 ‘썩 괜찮은 남자'였던 남편이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모든 가사노동을 자기에게 떠맡기고 있다는 사실을 꺠닫습니다. 그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를 해소하게 위해 가사노동 분담 게임을 제안하죠. 그가 쓴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메이븐)는 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페어 플레이 프로젝트 /메이븐

[“남편이 집에서 내 말을 듣기 시작했다”]

“2020년은 ‘내향성 인간들의 복수(revenge)’였다나.”

미국에 있는 친구와 비대면과 집콕의 ‘코시국’ 일상을 논하던 중 이 말을 듣고 무릎을 쳤습니다. “나는 원래 ‘집순이’라 그래도 견딜 만한데 활달한 사람들은 힘들 것 같다”고 했더니 안 그래도 저런 농담이 유행한다며 얘기해 주더군요.

사람 만나면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기 때문에 북적이는 모임에 가느니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합니다.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된다 여겼던 성격이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난 1년간 깨달았습니다. 세상 만사에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다더니 팬데믹이 준 의외의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 10주년 기념판 /RHK

내향인의 힘을 짚은 대표적인 책 ‘콰이어트’(RHK) 10주년 기념 특별판이 나왔습니다. 조용한 책벌레 소녀였던 저자 수전 케인은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됩니다. 내성적인 성품이 직업과 맞지 않아 고생하던 중 ‘왜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자기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원래 성격을 감추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죠.

‘내향성의 위대함’을 증명해 보겠다는 목표로 수년간 연구 끝에 펴낸 책이 ‘콰이어트’입니다. 전 세계 40여 국에 소개됐고 국내에선 15만 부 팔렸습니다. 저자는 “사람들은 훌륭해지려면 대담해야 하고, 행복해지려면 사교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외향적인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두세 명 중 한 명은 내향적”이라며 “자신의 기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받아들이라”고 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간 외향적인 척 버텼던 많은 내향인이 ‘나다움’의 이점을 느끼게 된 것이 10년 된 책이 다시 읽히는 힘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옳다 여겼던 모든 가치에 의문을 품게 하는 이 ‘뉴노멀’의 시기를 통과하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 숙고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코로나가 끝난 후 인류의 지적 자산은 더욱 풍성해질 겁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