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의 '도쿄 산책자'/사계절.

2018년, 750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찾았다. 반일 감정이 심했던 2019년에도 500만 명 이상이 일본을 찾았다. ‘토착왜구’로 의심받을 만한 사람들은 도처에 있다. 나 역시 그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를 놓고 벌어지는 논점 중에는 희극적이지 않은 게 별로 없는데, 반일 감정을 선동했던 당의 후보자가 도쿄에 집을 갖고 있어 논란이 됐다. 자업자득이라 생각하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이 일본의 부동산과 기업을 몽땅 사면 그건 친일인가 극일인가?

2017년 4월은 예년보다 추운 날씨 탓에 벚꽃이 늦게 피었다. 덕분에 벚꽃이 만개한 도쿄를 볼 수 있었다. 처음 도쿄를 찾았을 땐 도쿄의 외국계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외국인을 주로 만났다. 도쿄를 더 자주 찾게 되면서 도쿄의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일본인도 만나기 시작했다. 도쿄역과 황궁 사이에 위치한 마루노우치는 일본 금융의 중심이다. 마루노우치를 내려다보며 도쿄가 점점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는 내 말에 일본 최대 증권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M이 말했다. “동감한다. 올림픽을 계기로 도심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고용 시장도 좋다.”

김동조 글 쓰는 트레이더

4월의 도쿄가 그리울 때 집어드는 책은 하루키의 소설이 아니라 강상중의 ‘도쿄 산책자’(사계절)다. 강상중은 재일 교포다. 그는 나가노 데쓰오란 이름으로 한참을 살았다. 두 개의 조국 사이에서 흔들린 끝에 나가노 데쓰오란 이름을 버리고 강상중으로 살기 시작했다. 확고한 아이덴티티를 갖게 된 후 두 개의 조국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지만 삶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더 많은 모순과 당면했다. 강상중은 ‘인간은 누구나 몇 개의 아이덴티티를 가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삶의 모순을 해결했다고 썼다.

정체성을 깨닫는 것이 삶의 첫 번째 단계라면 다음 단계는 그 정체성을 바꿀 용기를 내는 것이다. 인간이 느끼고 싶어 하는 자유는 자아가 갇혀 있는 정체성의 감옥을 부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도쿄 산책자’는 근사한 책이다. 도쿄의 스물아홉 곳을 찾아 얻은 철학자의 사색이 담겨 있다. 그 사색의 핵심은 당신의 정체는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더 많은 서울 사람이 도쿄를 사랑하고 더 많은 도쿄 사람이 서울을 사랑하게 되길 바란다. 그게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김동조·글 쓰는 트레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