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그림책

하이케 팔러 글|발레리오 비달리 그림|김서정 옮김|사계절|184쪽|2만원

‘100 인생 그림책’에서 100세까지의 인생을 100장면으로 보여줬던 저자가 우정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얼마 전 친구의 생일 파티에서 돌아오던 길에서였다. 새로 만난 사람들과 어떻게 그토록 빨리 친해질 수 있었을까? 궁금해진 그는 ‘우정 사슬’을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친구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고, 그 친구를 찾아가 또 다른 친구를 소개받는다. 친구의 친구인 우타, 우타가 뉴욕에서 알게 된 자비네, 자비네가 뮌헨 공항에서 만난 요한나…. “우정 사슬에는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섰고 금세 지구를 세 바퀴쯤 돌았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을 방문한 두 친구가 '착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장면. 책에는 '함께 세상을 발견하는' 순간으로 소개돼 있다.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

사슬 속 친구들이 들려 준 우정의 순간들을 그려냈다. ‘나’와 ‘너’는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 세상을 발견하고, 서로 비밀을 털어놓고, 포도주를 함께 마신다.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다. 때로 서로 신경을 건드리고 상대가 조금 지겹게 느껴지기도 한다. 글줄이 길지 않은 이 책의 그림 속 인물들은 성별이나 피부색이 페이지마다 조금씩 다르다. 우정이 언어와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 가치임을 드러낸다.

우정은 학교에서 맺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슬처럼 이어진 우정의 대부분은 “스무 살에서 서른 살 사이에” 맺어진 것이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이 살아갈 삶이 거의 결정된다. 어린 시절 친구처럼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완전히 낯설어질 일은 별로 없다는 말이다.” 우정은 아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우정이 시작될 때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는 ‘화학반응’이 필요하다면, 그 우정이 수십 년씩 지속되기 위해선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우정 사슬 속의 한 사람은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우정에는 때로 물을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