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를 일군 두 주역 이현숙 디자인 경력관(왼쪽)과 이수경 학예연구관. 두 사람은 "유물관의 관계, 거기에 담긴 이야기, 눈으로 봤을 때의 아름다움 등을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말했다./김지호 기자

“미술품들이 워낙 좋기도 했지만 전시 구성 및 배치가 훌륭했다.” “이렇게까지 디스플레이에 신경 썼다고 느낀 전시는 기억에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8월 28일까지 열리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에 쏟아진 관람객들의 찬사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미술품 기증 1주년을 맞아 열린 이 특별전은 전시 55일 차인 지난 21일 기준 누적 관람객 9만7000명을 돌파했다. 수집가의 집에 관람객들을 초대한다는 신선한 스토리텔링이 ‘이건희’라는 이름값 못지않은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 박물관 안팎의 평가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국박(國博) 에이스 콤비’가 만든 전시라 역시 다르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전시 큐레이터 이수경(48) 학예연구관과 디자이너 이현숙(43) 디자인전문경력관을 지난 14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수집가의 초대’라는 콘셉트는 어떻게 탄생했나.

(이수경) “작년 11월까지만 해도 시대순 전시를 하려 했다. 그런데 이현숙 디자이너가 ‘그러면 박물관의 축소판이 될 것’이라면서 ‘수집가의 집’이라는 개념이 어떻겠냐 하더라.”

-전시 구성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이현숙) “초대받아 온 이들이 어떻게 하면 ‘집’을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남의 집에 초대받는 일이 드물어진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싶었다.”

이런 논의 끝에 탄생한 것이 전시실 입구의 중정(中庭)이다. 찻상이 놓인 탁자 앞에 앉아 마당의 동자석 위로 일렁이는 햇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네의 ‘수련’을 응시할 수 있도록 한 이 공간은 큰 호응을 얻었다. BTS의 리더 RM도 이 풍경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 학예관은 “모네의 ‘수련’은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전시품 대부분이 한국 미술품이라 어디에 놓아도 이질적이었다. 그래서 모네가 정원을 좋아했다는 데 착안해 후원의 개념으로 모네 전시실을 꾸몄다”고 말했다.

'어느수집가의 초대'전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호응한 중정. 동자석 너머 창으로 모네의 '수련'이 엿보인다./국립중앙박물관

-‘수련’이 보이는 창 말고도 창문을 연상시키는 뚫린 공간이 많다. ‘수집가의 서재’로 꾸민 전시실에서는 앞뒤로 뚫린 창 형태 진열장을 통해 연적(硯滴) 등을 감상하도록 했다.

(이현숙) “건축가 유현준 홍익대 교수의 책을 우리 둘 다 읽었는데 ‘집 안에서 창을 내야 소통이 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전시 주제가 인간, 자연, 물건 사이의 교감인데 그런 소통이 창을 통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 결과 모두 8개의 창이 생겼다.”

-‘이건희’라는 이름에 눌릴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이수경) “모든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었고, 리움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맥락의 전시를 준비해야 했다. 그렇지만 호사가들의 호기심만 충족시키는 전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래서 미술품을 보는구나’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장중하기보다는 친절한 전시를 준비했다. 예전엔 그림 걸고 진열장에 작품만 넣으면 됐는데 요즘은 전시가 그 공간의 ‘분위기’도 전해야 한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힘들다.”

회화사 전공자인 이수경 학예관은 올해 21년 차, 실내공간디자인을 전공한 이현숙 경력관은 17년 차다. 2013년 이스탄불에서 열린 ‘아름다운 한국문화재’ 전시에서 처음 손발을 맞췄고 이후 2016년 중·근세관 조선실 개편, 2020년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등에서도 함께 일했다. 두 사람은 “집이 같은 방향인 ‘퇴근 메이트’라 퇴근길 차 안에서 전시 이야기를 하며 합을 맞췄다”고 했다.

-첨예하게 대립한 적은 없나.

(이현숙) “디자이너와 기획자 사이에선 긴장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번 전시는 10개의 안을 놓고 끊임없이 논의하다 결국은 선택된 11번째 안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 나는 ‘A’라 하는데 상대가 ‘B’라 하더라도 상대가 왜 그 안을 제시했는지에 대한 맥락을 생각하다 보면 ‘B’를 넘어 더 좋은 ‘C’가 나올 수 있었다.”

-가장 합의가 어려웠던 부분은.

(이수경) “모네 작품 전시실 바닥에 타일을 깔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 작품은 액자에 유리가 있다 보니 그냥 조명을 치면 액자 라인이 바닥에 비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바닥에 모네의 다른 ‘수련’ 영상을 투사해 꽃 핀 연못을 연상시키도록 하려 했다. 영상의 선명도, 관람객의 보행감 등 고려할 요소가 많아 바닥 재질을 놓고 끝까지 머뭇대고 있었는데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법이 없는 이현숙 디자이너가 ‘이걸로 하죠’ 하더라. 그래서 회색 데코 타일로 결정했다.”

관람객들이 꼭 보았으면 하는 작품을 묻자 이 학예관은 이중섭이 스스로를 모델로 한 ‘판잣집 화실’을, 이 경력관은 권진규의 ‘모자상’을 꼽았다. “그림 속 화가는 현재 힘들고 가난하지만 자기 그림에 대한 열정을 쏟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한다. 그 느낌이 뭔지 알 것만 같다. 힘들어도 자기가 원하는 경지에 도달하고선 그것이 내게 당장의 성과로 오지 않더라도 자족하는 느낌. 그래서 그림을 볼 때마다 행복해진다. ”(이수경) “처음엔 ‘이게 잘 만든 건가’ 했는데 엄마에게 안긴 아이가 뒤꿈치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이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진다. 자그마하지만 따스함이 느껴지는 조각이고 무엇보다 아이를 안아본 경험이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이현숙)

이중섭의 '판잣집 화실'./국립중앙박물관
권진규의 '모자상'./국립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