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경채 1964년작 '계절'(125x64㎝). /학고재

열기 전까지, 닫힌 문은 벽이다.

화가 류경채(1920~1995)는 그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무 문짝이었다. 1964년 서울 대신동 자택에 달려있던 이 문을 떼어내 화폭으로 삼았다. 문 위에 금빛 물감을 칠하고, 군데군데 검정과 초록을 묻혔다. 그리고 겨울 나목처럼 뾰족한 형태로 표면 일부를 떼어내는 데콜라주(décollage) 기법도 적용했다. 완성된 작품에 ‘계절’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마모되고 또 생성하는 변화의 양상을 은유한다.

한국 초기 추상화가 류경채·이봉상·강용운·이상욱·천병근·하인두·이남규 등 7인의 작품 57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가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2월 6일까지 개최된다. 위상에 비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화가들의 내공을 드러내는 자리다. 제1회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통령상 수상 작가 류경채의 ‘계절’은 그 대표적 증거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해온 화가가 완성한 ‘추상의 문’인 셈이다.

한국 추상의 발전에는 1957년부터 1969년까지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재야 미술전 ‘현대작가초대미술전’도 큰 몫을 담당했다. 강용운·천병근 역시 이 전시로 주목받은 경우에 해당한다. 김복기 경기대 교수는 “’현대작가초대미술전’은 구상 미술이 대세였던 국전의 아성에 대항해 1960년대 화단의 질서 재편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