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시아프’ 참가자 김률희(25)씨가 선인장 그림 ‘군체3’를 걸고 있다. “스스로를 투영해 척박한 토양에서도 길어 올리는 생명력을 표현한 것”이다. /고운호 기자

“내 그림 좀 사줘, 물감이 더 필요하거든.”

이것은 젊은 화가의 호소이자 그림 제목이다.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코로나 사태로 일시 귀국한 김우성(27)씨는 올해 초 뼈가 들여다보이는 맨몸의 남성을 완성했다. “일종의 자화상”이라며 “내 솔직한 상황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옆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수영장 그림 ‘첨벙’을 패러디한 ‘호크니 그림에 첨벙!’이라는 그림도 내걸었다. “존경하는 분이지만 언젠가 뛰어넘고 싶다는 각오를 담았다.”

국내 최대 청년 미술 축제 ’2021 아시아프(ASYAAF)’ 개막을 하루 앞둔 26일, 젊은 작가들의 결기로 전시장은 뜨거웠다. 젊음이 나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날 달뜬 얼굴로 전시장에 그림을 걸던 라영미(42)씨의 경우가 그러하다. 미술학원 교사로 7년간 일하다 결국 접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아이들처럼 마음껏 내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였다. “대학·대학원생은 연령 불문 ‘아시아프’에 지원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 뛰어들었다”며 “내가 여전히 청년이라는 사실이 기쁘다”고 말했다.

이지우 ‘비워둔 자리’(24x16㎝).

조선일보사·홍익대학교가 공동 주최하는 이번 행사는 공모로 선발된 평면·입체·미디어 작가 500명의 작품 1200여 점을 서울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인다. 2008년 첫 회 이후 관람객 38만명, 작품 판매 8200여 점을 기록하며 청년 작가를 위한 등용문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 장기화 상황에서 청년 작가들이 느끼는 내적인 고립과 불안 등이 두드러지게 표출됐다”(한국교원대 정은영 교수)와 같은 심사평이 많았다. 미디어 분야 심사를 맡은 허준형 영화감독은 “어려운 시기지만 열정을 잊지 않고 창작에 여념 없는 작가들에게 힘찬 격려를 보낸다”고 했다.

이서윤 ‘고양이 책가도’(73x91㎝).

창작의 기저에는 자신의 이름을 오롯이 남기려는 열망이 깔려있다. 이번 평면 부문에는 3명의 강지혜씨가 참여했다. 이름은 같되, 인물화·정물화·풍경화 등 성격은 다 다르다. 이탈리아산(産) 석재로 된 물고기 꼬리 형상 조각을 출품한 이건희(27)씨는 “어딜 가나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면서 “그분은 역사가 되셨지만 난 아직 젊고 보여줄 게 많다”고 말했다. 산수화에 겸재 정선만 우뚝한 건 아니다. ‘마음 산수’ 연작을 출품한 정선(30)씨는 “계속 이름이 비견될 수 있도록 수준을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만 36세 이상 작가들이 참여하는 ‘히든 아티스트’ 부문도 비장했다. 목판 위에 푸른 한지(韓紙)를 뜯어 붙여 풀밭을 조성한 김호정(37)씨는 “낮에는 어린 딸과 분투하고 가족이 모두 잠든 밤에 책상에 앉는다”며 “육아를 위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멈춰야 하는 시간이 많았지만 앞으로도 열심히 잠을 잊으려 한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입장권 예약제를 시행한다. 홈페이지(asyaaf.chosun.com)에서 출품작을 확인할 수 있고, 행사 종료 후 구매도 가능하다. ‘아시아프’ 1부는 8월 8일까지, 2부는 8월 10일부터 22일까지 열린다. 월요일 휴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 입장료 성인 6000원, 학생 및 어린이 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