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는 인장(印章) 같은 것? 고정관념을 바꿔야 한다. 움직이는 건 기본. 들을 수 있는 로고까지 나왔다. CI(기업이미지 통합)가 시각을 뛰어넘어 공감각으로 확장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새 로고. 글자 자음과 모음의 가로선을 오선에 대입하고 글자마다 찍힌 점을 음계로 해석해 연주할 수 있다. 첫 글자 ‘세’에 찍힌 점은 ‘시’, ‘종’의 점은 ‘높은 도’가 된다. /세종문화회관

지난 2월 공개된 세종문화회관의 새 CI는 44년 전통 문화예술 기관의 근엄함을 깨는 것이었다. 한글의 제자(制字) 원리인 ‘천지인’에 건축가 엄덕문이 설계한 건물 파사드를 응용, 중앙 기둥과 수평 지붕 형태를 담은 로고를 만들었다. 얼핏 보면 생김만 달라진 듯하지만 비밀이 숨어 있다. 글자 자음과 모음의 가로선을 악보의 오선에 대입해 연주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 샘플 연주를 동영상으로 제작해 공개하기도 했다.

이 로고는 지난해 독일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국제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받은 그래픽 디자이너 신신(신해옥·신동혁)의 작품. 이들은 “단순히 보기만 하는 로고 타입을 넘어 ‘보고, 듣고, 즐기는’ 아이덴티티를 생각했다”며 “과거엔 고정된 로고 형태를 하나 만들어 일괄 적용했지만 요즘은 매체에 따라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시스템’으로서의 로고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한 회사라도 타깃, 서비스 등에 따라 브랜드 이미지를 세분화하기도 한다. 현대백화점도 그중 하나. 레트로 느낌의 한글 글꼴을 쓴 ‘현대식품관’, MZ 세대를 겨냥한 백화점 캐릭터 ‘흰디’, ‘멋진 친환경’을 강조하기 위해 마크 로스코 색면 추상을 응용한 쇼핑백 등 타깃마다 디자인의 결을 달리했다. 박이랑 현대백화점 브랜드전략팀장은 “과거엔 브랜드 이미지를 적용하는 대상이 주로 인쇄 매체였지만 지금은 인터넷으로 확장하며 특정 이슈·타깃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며 “로고의 핵심이 일관성·통일성에서 가변성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전용 서체를 적용한 네이버 신사옥 표지판. /네이버

공간에 적용되는 시각 체계도 조금씩 변화를 준다. 네이버는 최근 완공된 신사옥에 산업혁명의 시작 연도인 1784년을 적용해 ‘네이버 1784′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용 서체부터 만들었다. 윤석원 네이버 CX 브랜딩 리더는 “공간의 정체성엔 건축물 형태, 마감재도 중요하지만 곳곳에 표기되는 서체도 중요한 요소라 판단해 ‘1784 서체’부터 만들었다”고 했다.

이 같은 기업 이미지의 변주에 대해, 디자인 컨설턴트 여미영(스튜디오 디쓰리 대표)씨는 “기능과 감성을 결합해 ‘경험’을 전달하는 시대가 되면서 로고를 포함한 기업 이미지가 단순히 브랜드 이름을 각인하는 역할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