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가구 회사 비트라에서 지난해 무료로 공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체어 타임스(Chair Times)'의 한 장면. 비트라 디자인박물관 롤프 펠바움 관장이 박물관 소장품인 각양각색 의자 사이를 거닐고 있다. '체어 타임스'는 1800년대 이후 현재까지 '앉는다는 것'의 역사를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펠바움 관장은 "의자는 특정 시기의 유행과 시대정신, 혁신적 아이디어의 반영이며 사용자의 초상이기도 하다"면서 "일상의 어떤 물건도 이 정도로 다면적이지는 않다"고 말했다. Filmstill 'Chair Times', 2018 ⓒVitra: HOOK Film & Kultur Produktion GmbH.

문화는 선별과 여과의 오랜 역사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리스트를 제출하느냐는 것. 이번엔 건국대 디자인대학 김진우 교수가 선정했습니다. ‘당신을 변화시킬 의자 5’. 모든 이미지는 독일 비트라 디자인박물관에서 소장품 사진을 제공했으며 이 박물관의 온라인 컬렉션(collection.design-museum.de)에서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의자는 매력적인 물건이다. 인간의 체중을 버텨야 하는 구조체이며 신소재와 기술 개발의 치열한 현장이다. 사람의 몸에 직접 닿고, 앉은 사람이 끊임없이 자세를 바꾼다는 점에서 설계하기 까다로운 물건이기도 하다.

의자는 사용자의 성향도 드러낸다. “우리가 건물을 만들고 그 뒤엔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and afterwards our buildings shape us)”고 했던 처칠의 말처럼, 의자 디자인은 사람이 하지만 의자도 거기 앉은 사람을 ‘디자인’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젊고 창의적인 CEO들은 그들의 복장처럼 캐주얼한 의자를 선호한다. 그들의 의자는 가볍고 날렵해서 상대에게 친근하게 다가간다. 그래서 ‘꼰대’가 될까 두려운 사람들, 청년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는 의자부터 바꿔볼 것을 권한다. 소위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의자만 바꿔도 사회의 많은 것이 함께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개성이 분명한 의자 다섯 개가 있다. 이 중에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의자가 있는가? 물론 둘 이상의 의자,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의자가 동시에 당신을 유혹할 수도 있다. 오늘 하필 당신의 마음을 흔든 의자와 그 이유에 집중해 보자. 어쩌면 그 의자가 당신을 새롭게 변화시킬지도 모른다.

나무를 굽혀 다리를 만든 '스툴 60'. 다리가 네 개인 'E60'을 비롯해 다양한 모델명의 시리즈가 있다. Alvar Aalto, 60 / Stool 60, 1933 ⓒVitra Design Museum, photo: Jürgen HANS

1. 조화의 의미를 일깨우는 ‘스툴 60’ 혁명적 기술, 단순한 형태... 서로 잘났다고 경쟁 않는다

아는 의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신이 봤거나 사용하는 의자는 복제품일지 모른다. 단순해도 너무나 단순한 이 의자는 쉽게 복제된다. 국내 상업 공간에서 스툴 60의 진품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복제품의 퀄리티가 좋기도 하고, 40만원 가까이 주고 구입하기에는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의자의 역사적 배경은 묵직하다. 스웨덴에서 600여년, 러시아에서 100여년. 속국에서 벗어난 핀란드와 알바르 알토에게는 디자인을 통한 국가 정체성 구축이 절실했다. 독일 중심의 기하학적 모더니즘과도 차별화하고 싶었다. 숲과 호수를 닮은 유기적 형태의 스칸디나비아 모더니즘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 일부인 이 의자는 1932년에 만들어졌다. 당시 90도로 다리를 구부려 금속 부품 없이 좌판과 연결한 목재 성형 기술은 혁명적이었다.

당신이 만약 핀란드에 있다면 병원, 학교, 도서관, 카페 등에서 스툴 60을 원 없이 만날 것이다. 그들은 항상 여럿이 함께 놓인다. 서로 잘났다고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는다. 공간의 배경으로 존재해도 속상해하지 않는다. 사용되지 않을 때조차 차곡차곡 쌓여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은 사실 이런 위대한 평범함으로 가득하지 않은가.

엉덩이 부분에 지지대를 없애 S자 조형미를 극대화한 판톤 체어. Verner Panton, Panton Chair, ca. 1956~57 ⓒVitra Design Museum, photo: Jürgen HANS

2. 당신을 주인공이게 하는 ‘판톤 체어’ 정신 번쩍 드는 원색의 S자... 나를 중심으로 지구가 돈다

소위 지그재그 구조인 이 의자는 중력에 반한다. 사람이 앉았을 때 엉덩이가 깊숙이 들어가는 곳, 가장 힘이 실리는 곳 하부에 지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야 S자 조형미가 극대화된다. 기술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신소재 활용에 심취했던 베르너 판톤은 이 의자를 통해 플라스틱 성형 기술의 발전을 보여줬다.

판톤 체어는 튀는 의자다. 양산되는 의자 색상의 대부분은 강렬한 원색이다. 어떤 공간에 놓여도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아름답다. 주변의 시선을 즐겁게 감당한다. 이 의자의 광고 사진을 본 적이 있는가? 미끄러지듯 유려한 빨간색 의자 위에 도발적인 자세의 여성 모델이 앉아 있다. 주인공이고 싶은 의자의 콘셉트를 잘 보여준다.

우리 모두에게는, 지구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 줬으면 싶은 때와 상황이 있지 않은가. 나만, 늘, 언제나, 무조건 그래야 한다고 생각지만 않는다면 가끔은 그런 날도 괜찮지 않은가. 바로 그럴 때 판톤 체어에 앉아 보자. 가능하면 의자 색상과 대비되는 또 다른 원색을 입으면 좋다. 그 순간만큼은 코로나 블루가 산뜻하게 치유될 것이다.

마르셀 브로이어가 바우하우스 시절에 만든 모델명 B3. 당시 교수진의 일원이었던 추상화가 바실리 칸딘스키가 감탄해 '바실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Marcel Breuer, B3 / Wassily, 1925 ⓒVitra Design Museum, photo: Jürgen HANS

3. 진실에 주목하게 하는 ‘바실리 체어’ 100년만에 이름 드러난 여성 디자이너의 숨결 느껴보자

바실리 체어는 독일의 디자인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와 당시의 디자인 사조를 상징한다. 1925년 디자인인데 오늘날까지 전 세계로 팔려 나간다. 대학의 디자인 수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며 관련 논문과 책이 줄을 잇는다.

앉아보면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다. 엉덩이와 등을 직접 받치는 곳이 강철관이 아니라 가공된 면직물이기 때문이다. 이 면직물은 사람이 앉을 때는 유연하면서도 오래 사용해도 변형되지 않을 만큼 견고해야 한다. 바실리 의자의 성공은 사실 이 직물 디자인 때문에 가능했다.

나는 최근에서야 이 직물 디자인이 마르셀 브로이어가 아니라 여성 디자이너 군타 슈퇼츨의 것임을 알았다. 브로이어의 의자는 통째로 브로이어의 의자로 당연시했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진보적인 교육기관을 표방했던 바우하우스에서 행해진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이익 자체보다도, 진실을 조명하는 데 10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재는 과거에 묻힌 진실과의 싸움일지 모른다. 진실은 일시적으로 가려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드러나기 마련이다. 당신이 만약 바실리 체어에 앉는다면 이제는 직물 부분에 집중해 보자. 당신의 몸을 감싸는 여성 디자이너의 숨결을 느껴보자.

나무토막을 불규칙하게 이어 붙여 만든 파벨라. 파벨라는 브라질 빈민가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Fernando & Humberto Campana, Favela, 1991 ⓒVitra Design Museum, photo: Jürgen HANS

4. 아픔에 공감하게 하는 ‘파벨라’ 나무조각 덕지덕지... 브라질 빈민가의 차별·갈등 형상화

목공소에 굴러다니는 나무 조각을 덕지덕지 붙여 만든 의자 파벨라.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작품이 재활용이나 환경 문제를 시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Favela’를 구글에서 검색하면 페르난도·움베르토 캄파나 형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드러난다.

모니터에는 흑백 사진으로 보던 6·25 피란민들의 판자촌과도 같은 모습이 21세기 버전으로 컬러풀하게 펼쳐진다.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는 무작정 도시로 올라와 빈 땅을 찾고 주변의 재료를 잇고 기워서 만든 집, 거기서 살아가는 브라질인들의 삶을 가리킨다. 선택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브라질이라는 지역성, 밀림과 도시의 극적 대비, 양극화에 따른 차별과 갈등을 캄파나 형제는 이 의자의 주제로 사용했다. 즉, 의자 파벨라는 브라질의 아픔을 표현한다.

전 세계적 팬데믹 상황인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미 코로나로 39만명 이상이 사망한 지구 반대편의 파벨라를 바라보는 느낌을 표현할 단어가 있을까? 파벨라 의자에 앉아보자. 좀처럼 편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브라질인들에게 공감하게 된다. 어쩌면 나의 아픔도 조금은 치유될지 모른다.

중국 전통 의자에서 영감을 받은 모델명 CH24. 갈라진 등받이 때문에 Y체어 또는 위시본(wishbone·가금류 가슴 부위의 갈라진 뼈) 체어로 불린다. Hans J. Wegner, CH24 / Wishbone Chair, Y Chair, 1949 ⓒVitra Design Museum, photo: Jürgen HANS

5. ‘진짜’의 가치를 깨우쳐 주는 ‘Y 체어’ 중국 전통에 덴마크 감각 더했는데... 오히려 중국서 다시 베껴

형태에서 감이 오는가? 이 의자는 중국의 전통 의자에서 영감을 받았다. 둥글게 휘어져 몸을 감싸는 등받이와 팔걸이로 이어지는 곡선, 그와 대조적으로 바닥으로 곧게 내리뻗은 다리의 조형은 한스 베그네르가 심취했던 중국 전통 의자의 형태적 특징이었다.

거기에 베그네르는 덴마크 의자의 전통을 가미했다. 절제된 구조와 기능주의, 섬세한 수공예 기법, 친환경적인 재료 사용과 마감 처리 등이었다. Y 체어는 1950년 양산을 시작한 이후 덴마크 내에서도 최고의 수공예 기술자의 손으로 오늘날까지 만들어진다.

얼마 전 한 상업 공간에 Y 체어가 놓여 있어서 자세히 봤더니 중국 회사에서 복제한 것이었다. 가구 디자인 분야에서 복제는 새삼스러운 문제가 아니고, 베그네르의 의자 역시 무수한 복제품이 존재한다. 하지만 중국에서 복제한 Y 체어를 보는 것은 슬프다. 베그네르가 감탄했던 원본의 나라 중국에서 오히려 덴마크 디자이너의 의자를 복제하다니. 원본, 복제, 오마주의 개념을 이처럼 잘 설명하는 의자는 없을 것이다.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기회가 된다면 진품 Y 체어에 앉아보자. 디테일과 마감을 경험해 보자. 딱 한 번만 앉아보면 복제품과 절대로 헷갈리지 않는다.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