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

우리 동네 이름은 쉰능골이다. 능이 오십 개라는 뜻이다. 그 능 속에 너는 있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어느 왕족의 무덤을 파는 일이라 어렵고 설레고 기대도 크다. 무덤 위에 무성하게 자란 나무며 풀뿌리들 잘라내고 조심스레 흙을 걷어내야 한다. 걷어내는 흙들은 네 모습을 쉬이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 자꾸만 무너져 내려 제자리를 덮는다. 그럴수록 더 파보고 싶은 궁금증이 생긴다.

너는 너무 오래 잊히어 뼈도 없이 흙만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이미 누군가가 파내어 가버렸을 수도 있다. 그래도 쉬지 않고 파 내려가다 보면 귀걸이 한 쌍이나 자디잔 유리 목걸이 혹은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색다른 왕관 같은 대작을 만날지도 모를 일.

더구나 나는 오래전 그 어느 왕족의 후손이라는 족보에 얹힌 이름 아닌가. 내 몸이 파낸 흙에 점점 묻히어 갈 무렵 겨우 그 관 뚜껑 앞에 이르렀다. 부디 네가 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를 기대한다.

생전에 아버지는 문장이 되려면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하셨다. 그 문장이라는 것이 익히 타인에게 배움을 주는 작가라는 뜻이었다. 그런 아버지는 엄마가 서른넷일 때 어린 사 남매가 딸린 과부로 만들었다.

종일 튀김솥 앞에서 팔뚝에 꽃밭을 가꾸던 엄마는 나에게 ‘문장이 밥 먹여주나 치워라’ 하셨다. 사십이 넘어서 다시 널 찾는 나에게 너는 아직도 엄마의 팔뚝에 채송화, 맨드라미, 봉숭아로 남아 나에게로 왔다. 엄마는 ‘잘 찔락거린다’고 하시면서도 눈시울을 붉히신다.

이 까끕증 나는 코로나 시대에 든든한 등을 내어주시고 더할 수 없는 영광을 주신 조선일보에 감사하고 선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허동인 선생님 생전에 제게 주신 숙제 이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편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함을 질러야 말귀를 알아들으시는 엄마 찐으로 사랑합니다. 나의 늑대 목도리 김일호 시인과 언제나 아이들에게 초롱초롱한 시선을 맞추는 내 딸 보람이, 4년 안에 헌혈 100번 채우는 것이 목표인 아들 도형이 고맙고 사랑한다.

김광희

- 1957년 경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200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 2016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