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팜 제공 강원도 영월 '그래도팜'에서 수확한 에어룸 토마토. 이 앙증맞은 붉은 토마토의 품종 이름은 '인디고 로즈'다.
/그래도팜 제공 에어룸토마토의 일종인 '바나나 레그'. 산미가 낮고 씨앗이 적어 소스로 만들어먹기 좋은 토마토다.

“이건 땅콩호박이고 이건 패티팬호박. 여기 오는 분들은 보석이라도 본 양 감탄해요.”(웃음) 지난 28일 서울 논현동에서 만난 ‘양출서울’의 김승미 대표가 탁자 위 알록달록한 채소를 보며 말했다. ‘양출서울’은 채소 코스 요리를 술과 함께 내는 ‘채소바(Bar)’와 다양한 채소 요리법을 알려주는 ‘채소 클래스’를 운영한다. 코로나 시대에도 예약은 금세 마감.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 아름답고 색다른 먹거리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가 퍼질수록 그 갈망은 더 커지고요.”

‘듣보잡 채소’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듣보잡’은 ‘듣도 보도 못한 잡종’을 줄여 부르는 말. 그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각양각색의 채소를 사고 요리하며 즐기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다. 유행에 민감한 주부, 요리와 미식(美食)에 관심 많은 싱글족이 열광한다. ‘그래도팜’ ‘채소생활’ ‘준혁이네농장’처럼 전국 곳곳에서 뚝심 있게 남다른 채소를 길러내는 농장이 이름나기 시작한 것도 이 흐름을 반영한다. 제법 비싼 돈을 내고 꾸러미로 받아보는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도 많다.

/영상미디어 양수열 기자 '채소바'를 운영하는 서울 논현동 '양출서울'의 채소코스요리. 맨 앞 붉은 접시에 놓인 건 파프리카 중에서도 특이품종인 카멜레온 파프리카를 구운 것. 가운데 접시엔 케일을 깔고 퀴노아와 다진 물가지를 올렸다. 맨 위 접시엔 아보카도를 깔고 엔다이브와 김가루를 올렸다. '

◇천차만별 채소 파는 농장… 희귀 채소요리 내는 맛집까지

서울 혜화동·정동·합정동·성수동에서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장터 ‘마르쉐’는 듣보잡 채소에 관심 있는 이들이 몰리는 곳 중 하나다. 온라인 장터가 오프라인보다 더 잘된다는 요즘, 이곳만은 세상 흐름과 반대로 간다. 마스크를 쓰고 에코백을 맨 이들이 고수꽃이나 독특하게 생긴 모큠 당근, 골든 비트 같은 낯선 채소를 사서 한 아름씩 안고 떠난다. 매달 이곳에서 장을 본다는 주부 소은형(37)씨는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된다”고 했다. “여행도 못 가는데, 이곳에 오면 유럽 시장에서나 보던 독특한 식재료가 있어요. 게다가 이게 전부 우리나라 토종 텃밭에서 기르는 거라니 안 좋아할 수 없죠.”

충남 홍성에 있는 농장 ‘채소생활’은 듣보잡 채소를 매달 꾸러미로 보내주는 곳. 3만원가량 내면 다양한 유기농 채소를 선별해서 보내준다. 상자 안에 어떤 채소가 있는지는 미리 알 수 없다. 가령 9월 채소는 가지·호박·파프리카. 물가지·골든글로리 같은 독특한 가지와 피노키오·카멜레온·스윗파프리카 같은 색다른 파프리카가 담겼다. ‘채소생활’ 이윤선 대표는 “다양한 채소를 소개하고 싶어 구독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 우리도 놀라고 있다”고 했다.

/영상미디어 양수열기자 강원도 영월 '그래도팜' 농장에서 자신이 수확한 '에어룸 토마토'를 들어보이는 원승현 대표.

◇유행 민감한 주부·싱글족 열광… 월별로 구독해서 배달 받기도

에어룸 토마토는 올여름 소셜미디어를 강타한 과일이다. 에어룸(heirloom)은 본래 ‘가보(家寶)’라는 뜻. 종자 회사에서 씨앗을 사오는 게 아닌, 직접 열매에서 씨를 받아내 길러낸 토마토를 에어룸 토마토라 한다. 강원도 영월 ‘그래도팜’의 원승현 대표는 국내에선 흔하게 볼 수 없는 15종의 에어룸 토마토를 길러 수확한다. 그는 “외국 유명 요리사들을 데리고 우리 장터에 가면 ‘한국에선 요리하기 힘들겠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그만큼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다는 거죠. 우리나라 토양과 기후에 맞춰 다양한 작물을 길러내야 하는데, 기존 틀을 깨는 농장이 많지 않았어요. 제가 그걸 해보고 싶었죠.” 그린지브라·바나나레그·타이거렐라처럼 그가 길러낸 토마토는 요즘 가장 핫한 식재료가 됐다. 마케팅·홍보 전문가 ‘인애스타일’의 김인애 대표는 “천편일률적인 먹거리에서 벗어나고픈 소비자들이 새로운 식재료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했다. “저만 해도 에어룸 토마토를 여러 번 사다 먹었어요. 빛깔·맛·향이 각각 다르더라고요. 토마토 맛이 한 가지가 아니란 걸 이제야 알게 된 거죠. 알수록 새롭고 황홀했어요. 맛은 결국은 경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