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장위동 우리은행체육관 사무실에서 위성우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 우리WON 감독이 슬램덩크 '북산고' 주전 선수들의 피규어를 소개하고 있다. 구매한 지 약 10년이 된 이 피규어들은 위 감독의 사무실 선반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잘 보이도록 전시돼 있다. /오종찬 기자

설 연휴에 오랜만에 극장을 찾아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봤다. 약체였던 한 고교 농구팀이 최강의 팀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다. 대학생 때부터 몇 번이나 만화책으로 읽어서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오십이 넘은 나이인데도 다시 가슴이 뛰었다.

영화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슬램덩크’에는 나와 닮은 캐릭터가 있다. 주인공들이 뛰는 북산고 농구팀의 식스맨(5명이 하는 농구에서 여섯 번째 선수로 불리는 교체 멤버)인 권준호다. 별명이 ‘안경 선배’다. 강백호, 서태웅 등 불같은 성격의 동료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선수 시절 나도 식스맨이었다.

식스맨은 경기에서 뛰는 시간보다 경기를 지켜보는 시간이 많다. “저기가 비었구나”, “저리로 돌아가야 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 경기에 투입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경기의 흐름을 읽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경험들이 여자농구리그 최강팀 우리은행의 감독이 될 수 있도록 해줬다고 생각한다. 2012~2013 시즌에 내가 팀을 맡은 이후 지난 10번의 시즌 동안 우리 팀은 정규리그 8회 우승, 챔피언결정전 7회 우승의 기록을 세웠다.

이번엔 선수가 아니라 감독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승부를 겨룰 때 ‘자만심’이 얼마나 무서운 적(敵)인지 깨달았다. 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배웠다.

전국 최강 산왕공고와 맞선 북산고는 20점을 뒤지며 끌려가고 있었지만, 북산고 3점 슈터 ‘불꽃남자’ 정대만의 대활약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산왕공고는 북산고쯤은 무난히 이길 수 있다고 자만했기 때문에 졌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북산고 선수들은 “이길 수 있다”고 스스로를 격려하고, 동료를 믿었다. 중학 시절 MVP였지만, 한때 농구를 떠나 방황하다 돌아온 정대만은 원작 만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다”.

내 훈련은 혹독하다고 소문이 나있다. 선수들을 강하게 몰아붙인다. 그런 훈련을 반복하고 독려하는 것은 감독에게도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승리하겠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가득한 선수들, 이기고 있을 때도 빈틈을 보이지 않는 팀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서태웅과 채치수 등 북산고 선수들은 산왕공고 선수들에게 개인 기량에서 상대가 되지 않을 만큼 꺾이고 좌절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주무기인 득점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리바운드·스크린·패스 등 다른 팀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기여하며 결국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낸다. 득점을 책임지는 스타 선수를 포함한 선수 전원이 공이 없는 위치에서도 얼마나 팀을 위해 헌신적으로 움직이는지가 승리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막강한 점프력으로 리바운드에는 강하지만, 농구 초보인 풋내기 강백호는 2만개의 슛을 던지면서 연습해 마지막 결승 점프슛을 성공시켰다. 엄청난 노력을 결과로 보상받을 때만큼 아름다운 순간이 어디 있을까. 슬램덩크가 내게 깨우쳐준 것은 “열심히 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간절함이 승패를 가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