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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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 칼럼] 옥스퍼드大는 왜 차인표의 '위안부 소설'을 채택했나?
배우 차인표가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건, 군을 막 제대하고 돌아온 97년 여름이었다. TV를 켜니 작은 키에 동그란 얼굴의 할머니가 공항 게이트를 걸어 나오는 장면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열여섯 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캄보디아 오지에서 55년을 살아온 훈 할머니. “죽기 전 ...
2024.08.28(수)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바보 장기표'의 눈물
병문안을 가겠다고 하자 장기표는 프레스센터 지하의 보리굴비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말기암 진단을 받았지만 아직 걸을 힘은 있다고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나왔다. 아내 조무하는 천하의 장기표를 ‘바보’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나, 이날은 말이 없었다. 남편의 밥 위에 가시를 발라...
2024.08.07(수)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경제개발 원조가 민주당? '삼식이 삼촌'의 거짓말
경제학자 장하준에게 “혹세무민하지 말라”고 질타한 건 유시민이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장하준 당시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대한민국 경제 상황을 ‘국가 비상 사태’로 진단했기 때문이다. “문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은 대증요법에 불과하고, 최저임금 인상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2024.07.17(수)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6·25에 부르는 리차드 김의 '하와이 아리랑'
리차드 김은 하와이로 이주한 한인 2세다. 그에겐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었다. 워싱턴주립대를 다니다 군에 입대한 뒤 일본으로 파병 간, 찬제 김 주니어 일병이다. 동생이 마지막 소식을 전한 건, 1950년 7월이다. ‘4시간 뒤 규슈를 출발하는 군함을 타고 전쟁 중인 한국으로 들어간...
2024.06.26(수)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어퍼컷' 날리기 전에 묵념을 했더라면
자식을 군대 보낸 엄마들이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눈물의 입소식’을 경험하지 못했다. 코로나 시기에 아들이 입대했기 때문이다. 신병 훈련소 앞에 아이만 떨구고 가라는 지시가 서운해 차에서 내렸다가 군인의 제지를 받았다. 백미러 속 멀어져 가던 까까머리 아이들은 부모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인...
2024.06.05(수)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족집게 '엄문어'의 총선 예측은 왜 빗나갔을까
엄경영은 지난 총선을 기해 ‘엄문어’에서 ‘엄주꾸미’로 강등됐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선거평론가인 그는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얻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선 여당이 완패할 거라 예측해 족집게란 뜻의 별명을 얻었지만, 22대 총선에선 국민의힘이 과반을 달성한다고 전망했다가 체면...
2024.05.15(수)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민주 건달' 개탄했던 어느 사회주의자의 訃告
홍세화를 만난 건 작년 이맘때다. 암 투병 소식에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무턱대고 문자를 보냈었다. 답장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사회주의자인 그는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란 책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뒤 조선일보에 줄곧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그런데 두 시간 뒤 문자가 울렸다. 홍세...
2024.04.24(수)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전태일을 진영에 가두지 말라"는 한석호의 절규
전태일 재단은 그 흔한 스타벅스 하나 없는 창신동 봉제골목에 있었다. 서울시가 청계천 변에 세운 전태일 기념관에 재단이 있는 줄 알았다고 하자, 한석호는 “전태일이 봉제사들 곁에 있어야지 어딜 가느냐”며 하회탈처럼 웃었다. 뼛속까지 노동자인 그는 전태일 재단의 사무총장이다. 우리는 지난...
2024.04.03(수)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파묘'의 800만 흥행을 보며 시부야 스카이를 떠올린 까닭
영화 ‘파묘’가 흥행에 시동을 걸고 있을 때, 도쿄 미나토구에 있었다. 팝아트의 거장 ‘키스 해링’전을 보러 모리미술관을 찾아가던 길인데, 지하철역 출구를 잘못 나온 바람에 뜻밖의 장소에 도착했다. 모리미술관이 있는 모리타워가 아니라 그 사촌 격인 모리JP타워, 그러니까 요즘 세계 건축...
2024.03.12(화)
|김윤덕 기자
[김윤덕 칼럼] 국민을 역사의 까막눈으로 만든 '백년전쟁'의 침묵
영화 ‘건국전쟁’은 70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뉴욕 카퍼레이드 영상을 공개해 화제가 됐지만, 586 세대를 사로잡은 건 4·19혁명 당시 이승만 모습이다. 4·19가 일어나고 나흘 뒤, 85세의 이승만이 부상당한 학생들을 찾아가 북받치는 눈물을 삼키는 장면이다. “내가 맞아야 할 총을 ...
2024.02.21(수)
|김윤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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