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은 최근 에너지 시장이 AI(인공지능)를 비롯한 첨단 산업 발전으로 급변하는 가운데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에너지 설루션 패키지’를 제공하는 회사로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같은 SK그룹 계열사인 SK E&S와의 합병은 그 시작으로 꼽힌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석유화학 등 기존 석유 기반 사업에 SK E&S의 LNG(액화천연가스) 사업을 더해 화석연료부터 신재생에너지까지 포괄하는 회사로 발돋움한다. 오는 11월 합병 법인이 출범하면 자산 100조원·매출 88조원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에너지 기업이 탄생하게 된다. 한층 커진 몸집을 바탕으로 에너지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SK엔무브·SK어스온 등 자회사의 기술력 역시 SK이노베이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한 축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 ‘열 관리’ 잡아라
SK이노베이션의 윤활유 자회사 SK엔무브는 열이 많이 발생하는 데이터센터·에너지 저장 장치(ESS) 등을 식히기 위한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이 발전하면서, 전력 효율을 높이고 반도체 성능과 수명 저하를 방지하는 열 관리 기술은 미래 먹거리로 꼽힌다.
SK엔무브는 데이터센터 액체 냉각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 IT 기업 델 테크놀로지스·데이터센터 액침냉각 전문 기업 GRC와 공동으로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 냉각유를 활용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SK엔무브의 냉각유를 영국 액체냉각 설루션 전문 기업 아이소톱의 제품에 탑재해 SK 텔레콤의 AI 데이터센터 테스트베드에 적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앞서 지난 2월 SK텔레콤은 아이소톱과 이와 관련한 업무협약(MOU)도 맺었다.
또, 이달 SK엔무브는 방산 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협력해 세계 최초로 불타지 않는 액침냉각 ESS 개발에도 성공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모듈 내부에 냉각 절연액을 채워 열을 식히고 산소 유입을 차단해 불이 번지는 걸 막는다. SK엔무브 관계자는 “현재 해양수산부 산하의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의 전기 추진 선박에 공급해 실증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액침냉각 ESS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액이 내부에 채워져 있어, 배터리 셀 하나에서 불이 나더라도 다른 셀로 불이 번질 가능성이 작다”고 말했다. 절연액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먼지와 염분 등 내부 손상을 유발하는 물질의 유입 가능성이 적은 것도 화재 가능성을 낮추는 이유로 꼽힌다.
◇中·동남아서 에너지 탐사 가속화
‘업스트림(에너지 탐사·생산 공정)’에서 사업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는 자원 개발 자회사 SK어스온도 SK이노베이션의 경쟁력 확보에 힘을 보태고 있다. SK어스온은 이달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 회사 페트로나스와 생산물 분배 계약을 맺고, 말레이시아 사라왁주 해상에 있는 ‘케타푸 광구’ 운영권을 확보했다. 케타푸 광구는 원유와 가스 매장이 확인된 사라왁주 해상의 미개발 지역 4곳을 가리킨다. SK어스온이 페트로나스와 맺은 계약은 계약자가 탐사와 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위험을 부담하고, 원유·가스를 생산할 때 미리 정해둔 비율에 따라 생산물을 나눠 가지는 방식이다. SK어스온은 케타푸 광구 운영권과 지분 85%를, 나머지 지분 15%는 사라왁주 석유 개발 공기업인 PSEP가 갖는다.
SK어스온은 개발 타당성을 검증하고 개발 단계를 거치면, 케타푸 광구에서 2031년 생산을 시작해 본격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K어스온은 내년부터 케타푸 광구와 SK427 광구를 연계해 탐사에 나서, 개발 성공 가능성을 높일 계획이다. SK427 광구는 이미 2022년 4월 SK어스온이 운영권을 따낸 곳으로 케타푸 광구와 인접해 있다. SK어스온 관계자는 “케타푸 광구는 매장량 5000만배럴 규모로, 올해에만 영업이익 2500억원이 전망되는 중국 남중국해 17/03광구보다 사업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SK어스온은 에너지 자원 개발 기술력과 광구 운영 역량을 앞세워 중국과 동남아 지역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