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수박이 자랐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사실이다. 2021년 지구상 가장 추운 지역인 남극 보스토크의 세종과학기지에서 수박과 애호박, 고추, 토마토가 탄생했다. 영하 25.6도의 냉혹한 환경에서 농작물이 자라난 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팜이 만든 기적이다.
스마트 농법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토양과 물, 햇볕, 기온 등 적정한 생물환경을 인공지능(AI)으로 자동 제어하며 농작물을 재배하는 기술이다. 외부 기온이나 날씨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사계절 고른 생산량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1959년 우리나라 농업 생산량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온 비닐하우스의 이점이 극대화됐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농업은 또 다른 위기에 직면했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른 농산물 개방으로 국산 농산물 소비가 줄어드는 한편, 심각한 고령화로 농가 경영주의 평균 연령은 68세(2022년 통계청 농림어업조사)까지 치솟았다. 이와 함께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와 환경문제가 세계적인 식량난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여기에 스마트 농업이 위기 극복을 위한 핵심 키로 떠올랐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자동 제어로 노동력이 적게 들어 고령 농장주도 설비만 갖추면 낮은 생산비로 안정적 작물 생산이 가능하다는 점과 생산량, 품질이 일정해서 계약재배와 같이 가격 경쟁력과 판로를 갖춘 안정적 수입 확보로 이어진다는 점이 특장점으로 거론된다.
스마트 농업의 유용성은 비단 농업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으로 도심에서도 옥상 등 유휴공간에서 도시 농업을 하는 세상이 온다. 취미나 여가를 넘어 경제적 이익을 가져오는 산업으로 급성장하는 것이다. 특히 매년 100만 명씩 늘어나는 65세 인구가 퇴직 후에 상시 수익을 낼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 및 소득원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더욱이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친환경 재배가 가능하다는 점은 온난화 위기에 처한 전 세계를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마포구는 이러한 변화를 맞이할 준비에 나섰다. 이미 지난해 구청사 1층에 스마트팜 설비를 구축해 바질, 상추 등 엽채류 재배를 시작했고 올 하반기에는 마포구 전체 동주민센터 유휴공간으로 스마트팜 시설을 넓힌다. 또한 망원동 공영주차장 유휴공간에는 250㎡ 규모의 스마트팜을 조성해 어린아이부터 구민 누구나 스마트 농법을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이는 머지않아 우리 일상에 자리 잡을 스마트 농업을 먼저 경험하고 생활에 적용해 나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다. 벼를 본 적 없는 도시 아이들이 쌀나무에서 쌀이 난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스마트팜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흙이나 햇빛 없이 키우는 작물은 한낱 공상 과학에 지나지 않겠는가?
온 땅을 뒤덮는 식물도 처음엔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듯 중요한 것은 용기 있는 시도와 앞선 출발에 있다. 이번 스마트팜 조성사업으로 마포구민이 스마트 농업 혁명이 가져다줄 혜택을 맨 먼저 거머쥐는 승자가 되길 바란다. 2021년 남극에서 열매 맺은 작은 수박이 새로운 역사가 됐듯 마포구 스마트 농업의 역사도 2024년 오늘을 마중물로 기억하게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