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부산시청 1층 로비 한편의 ‘부산시청 들락날락’에서는 알록달록 푹신한 바닥에 어린이들이 배를 깔고 엎드려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그 옆엔 엄마나 아빠가 앉아 다른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지켜봤다. 한쪽엔 미디어아트 전시관도 있다. 일곱 살 아들과 함께 온 어머니 김모(42)씨는 “아이와 함께 집에서 걸어와 책도 읽고 유명 화가의 그림을 활용한 미디어 아트도 볼 수 있어 참 좋다”며 “아이는 놀고 나는 쉬면서 재충전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부산시가 미래도시 비전으로 추진 중인 ‘15분 도시’가 가시화하고 있다. ‘15분 도시’란 프랑스 카를로스 모레노 소르본대 교수가 주창한 개념으로 도보나 자전거 등으로 15분 거리 안에서 기본적 생활 수요가 다 해결되는 곳을 말한다. 요즘은 ‘n분 도시’로 확장됐다. n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와 범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정해 주민들에게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도시를 말한다. 부산·파리의 ‘15분 도시’, 멜버른·포틀랜드의 ‘20분 도시’ 등이 그 사례다.
김광회 부산시 경제부시장은 “생활, 일, 사업, 의료, 교육, 여가 등 6가지 필수 기능을 도보·자전거 등을 통해 15분 안에 누릴 수 있는 도시를 구축할 것”이라며 “따뜻한 공동체 활성화로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도시,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행복도시 부산을 구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부산 15분 도시’는 지난 2022년 7월 기본구상 용역을 마치고 전체적인 밑그림이 그려졌다. 부산을 62개 생활권으로 나누고 각 권역별로 접근성·연대성·생태성 등 3대 분야 핵심과제를 추진한다는 게 골자다. 이들 과제 수행을 통해 62개 권역을 각각의 ‘15분 도시’들로 탈바꿈시킨다는 것이다. 이후 부산의 ‘15분 도시 구상’은 제주도의 ‘15분 도시 추진’, 정부의 ‘도시계획 혁신방안’ 등에 영향을 미쳤다.
부산시는 기본구상 용역 완료에 이어 그 해 8월 각 구·군 및 지역주민들과 협업해 해당 지역 내 ‘15분 도시’를 위해 필요한 시설이나 사업, 정책을 정하는 ‘해피 챌린지’를 시작했다. 지난해 부산진구·사하·사상구 등 7개구에서 ‘해피 챌린지’를 했고 10개 프로젝트를 선정, 추진에 들어갔다. 올해는 나머지 9개구에서 프로젝트를 발굴, 선정할 계획이다.
김지현 부산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n분 도시’는 일상 생활권 안에서 다채롭고 안성맞춤형인 도시 서비스를 누리게 만드는 도시 공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며 “부산이 가야할길은 멀지만 발걸음을 뗐다는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들락날락’은 ‘15분 도시, 부산’의 신호탄이다. ‘들락날락’은 지난 2022년 9월 부산시청에 첫선을 보인 이래 현재 부산 시내에 47곳이 생겼다. 37곳은 설치 중이다. 임경모 부산시 도시균형발전실장은 “‘들락날락’은 부모와 아이, 주민과 주민들이 문화·놀이·학습 등 다양한 차원에서 서로 부대끼며 친밀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게 하는 ‘15분 도시’의 앵커시설”이라고 말했다.
지난 해 선정된 ‘해피 챌린지’ 대상지 중 부산진구 ‘당감·개금 생활권’ 프로젝트는 오는 10월쯤 그린카펫(길다랗게 띠처럼 생긴 도심 쌈지공원), 백양가족공원 리모델링, 개금테마공원 숲속 산책로 등의 조성이 완료될 예정이다. 들락날락에 이은 ‘15분 도시’의 구체적인 사례다. 이들 사업은 과정 중에 주민들의 요구와 의견을 반영하면서 진행되고 있다.
김소영 부산시 15분도시기획과장은 “주민들이 사업 추진을 하면서 서서히 주도감, 창의감, 만족감 등을 느껴 가는 게 눈에 보인다”고 말했다. 사상구 괘법·감전생활권, 사하구 신평·장림생활권 등의 사업은 설계를 발주하는 등 올해 본격 추진된다.
지난해 연말 개관된 부산해운대구 재송동 ‘하하센터’도 ‘15분 도시’ 관련 시설이다. ‘하하센터’는 신노년 사회참여공간. 갓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인 신노년층이 지식·재능·경험 등을 공동체를 위해 기부하며 봉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청·중·장·노년 등 전 세대가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유대감을 느끼게 만들자는 취지로 계획됐다. 현재 여가와 문화, 학습 및 동아리 활동 등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개발된 프로그램은 오는 5월쯤 운영에 들어간다. ‘하하센터’는 사하구 신평동, 사상구 괘법동 등 2곳에 추가 개설된다. 이들 ‘하하센터’는 연내 개설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센터는 향후 62개 생활권에 각 1곳씩 만들어진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15분 도시 부산은 시민들의 라이프 스타일 대전환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자원을 절약하고 탄소배출도 줄이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일”이라며 “그러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과제인 만큼 시민들과 함께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