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부터 74년간 명맥을 이어온 서울 용산의 대표시장, 용문시장이 대변신에 성공했다. 서울 전체 396개 시장 중 64번째(2월 기준) 규모지만 용문시장은 최근 수년간 서울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다. 온라인 판로 개척과 맥주축제 개최 등 기존 전통시장과 다른 도전을 했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시도로 매출 상승까지 이뤄내고 있는 용문시장의 변화는 앞으로 전통시장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9~10월 5주간 매주 금요일 열린 용문시장 ‘용금맥 축제’ 모습. 상인회측에 따르면 축제 기간에 약 1만7000명의 인파가 몰려 4억원 가까운 매출이 나왔다. 올해 10월에는 ‘용금맥 축제 시즌2’가 확 달라진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용문시장

◇ 전통 맛집부터 퓨전 술집까지… ‘맛집’의 향연

용문시장의 강점은 신구(新舊)의 조화다.

먼저 해장국집 ‘창성옥’은 시장 개장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3대 해장국집으로 불리는 곳이다. 또 가수 성시경의 유튜브 채널 ‘먹을텐데’에 등장한 ‘이조순대국’도 빼놓을 수 없다. 깁밥 한 줄 사려고 30분은 줄을 서야 하는 ‘싱싱나라김밥’이나 부산 본토의 맛에 비견되는 ‘부산어묵’의 물떡도 인기다. 허름한 노포 스타일의 ‘용문포차’와 ‘왕노가리’는 최고 가성비 술집으로 통한다. 족발이 당긴다면 ‘만원족발’과 ‘장충동 한방족발’은 필수코스. ‘맛나분식’의 수제 햄버거와 ‘소풍’의 밀떡볶이도 외지인들이 많이 찾는 메뉴다.

MZ세대 감성을 무기로 새로 둥지를 튼 가게도 여러 곳이다. ‘달술집’은 금융업에 종사했던 대표가 한국 전통주부터 백주, 사케, 위스키 등 각종 주류와 3~4만원대 코스 요리의 궁합을 선보인다. 아시아 퓨전 다이닝 식당인 ‘포이키친’은 술과 곁들여먹는 다양한 제철 메뉴로 2030세대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 온라인 판로 개척과 축제 마련… 전통시장의 대변신

코로나 사태 때 타격을 입은 상인회가 내놓은 자구책은 온라인 판매 시장 개척이었다. 2020년 서울시가 지역 대학과 자치구를 매칭해 지역상권 등을 활성화하는 서울캠퍼스타운 사업에 인근 숙명여대가 선정되며 용문시장 살리기에 나선 것이 변화의 단초가 됐다. 당시 용문시장 상인회는 숙명여대 캠퍼스타운사업단과 함께 ‘디지털 혁신’을 꾀했다. ‘밀키트(간편조리식)’를 개발해 라이브커머스를 진행하고, 각종 온라인 플랫폼과 ‘놀장(놀러와요 시장)’ 등 배달 앱을 활용해 전국 판매까지 나섰다. 배송 상품이 변질하는 것을 막고 입출고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 ‘온라인 배송 서비스 센터’도 운영했다.

결과는 대성공. 2021년 한 해 온라인으로만 약 8억 5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7년부터 상인회를 이끌고 있는 반재선(67) 상인회장은 “상인들에게 온라인 판매는 그야말로 높은 벽과 같았다”면서도 “도전을 주저하지 않아 이런 성과가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용문시장 상인회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해 상인들의 온라인 판매를 지원하고 있다. 상인회에 따르면 90% 이상의 상인들이 소셜미디어 운영 방법을 숙지했다. 각 상점들은 개별적으로 온라인 상점을 운영하거나 놀장, 쿠팡이츠, 배달의 민족 등 배달 앱에 입점해 높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특히 놀장에는 50여개 상점이 입점했다. 이를 통해 온라인 매출은 매년 꾸준히 상승 중이다. 상인회측은 올해 안에 네이버 ‘동네시장 장보기’에도 입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용문시장은 올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디지털전통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돼 온라인 마케팅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임정호 운영단장은 “상인들이 더 많은 온라인 플랫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 젊은 고객 유입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 MZ세대 감성 붙잡은 ‘용금맥’ 축제

용문시장은 오프라인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한 ‘용금맥 축제’가 이를 증명했다. ‘용금맥’은 ‘용문시장 금요일 맥주 축제’의 줄임말. 방문객들이 안주나 먹거리를 구매하면 맥주 무료 교환권을 제공하고 노상에 마련된 간이 테이블에서 즐길 수 있는 행사다.

축제는 매주 금요일 총 5회 열렸다. 1회차에는 1500여명이던 고객이 마지막 5회차 때는 5000명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소문을 듣고 지방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다. 손님이 넘쳐 시장 안쪽 골목에 마련한 돗자리와 간이의자는 오히려 2030세대의 감성을 자극했다. 소셜미디어에는 인증샷과 함께 ‘용아맥(용산 아이맥스)보다 용금맥’이라는 문구가 유행처럼 번졌다. 반 회장은 “젊은 사람들은 어느 자리에 앉아도 추억이라며 즐기는 분위기였다”며 “축제 자리가 당근마켓에서 3000원에 거래됐을 정도”라고 말했다.

용문시장은 오는 10월 ‘용금맥 축제 시즌2′를 계획 중이다. 이번 축제는 특히 MZ세대 입맛에 맞는 메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달 중순 메뉴 선정을 위한 출품회까지 진행할 예정이다. ‘바가지 요금’ 근절에도 나섰다. 대원칙은 ‘1만원 이상은 안 된다’는 것.

이에 용산구청도 지난 3월부터 아케이드 등을 설치하는 시설현대화사업에 착수해 시장을 지원하고 있다. 올 10월이면 용문시장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서울시가 주관하는 2023년 지역상권 활성화 사업이나 용산 용마루길 상권 육성사업 등에도 선정돼 큰 변화가 예고돼 있다.

반재선 상인회장은 “상인들이 변하면 전통시장이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처럼 용문시장은 전통시장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