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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찬바람이 불 때부터 보양식을 먹는다. 한여름에 삼계탕이나 장어 등을 먹는 한국과 정반대다. 중국 사람들이 겨울에 보양식을 먹는 이유는 겨울에 쓸 영양분을 축적하기 위해서다. 과거 중국에서 만난 한 한의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겨울은 자연이 일시 멈춘 상태다. 인체도 마찬가지. 이럴 때 거름 즉 보양식을 줘야 몸에 녹아 들어간다. 여름에 먹으면 활동하면서 다 빠져나간다.”

보양식을 한국처럼 여름에 먹는 게 옳은지, 아니면 중국처럼 겨울에 먹는 게 맞는지는 판단을 유보한다. 어쨌거나 중국에서는 이제부터가 보양식의 계절이다. 중국인이 가장 대중적으로 즐기는 보양식은 훠궈(火鍋)이다. 끓는 육수에 고기나 채소, 해산물을 넣어 익혀 먹는다. 일본의 샤부샤부와 비슷하다.

땅덩어리 넓은 중국답게 훠궈는 지역마다 모양도 재료도 이름도 다양하다. 베이징(北京)이나 내몽골 등 북방에서는 양고기를 주로 먹어 솬양러우 또는 양러우솬궈라고 한다. 광둥에서는 해산물을 즐기기에 하이셴다볜루(海鮮打邊爐)라고 한다. 가장 유명한 훠궈는 충칭(重慶) 스타일이다. 충칭은 중국에서 ‘훠궈의 도시(中國火鍋之都)’라고 부른다. 전국 10대 훠궈 전문점 대부분이 충칭에 본점을 두고 있을 정도로 훠궈를 즐긴다.

충칭이 훠궈로 유명해진 건 춥고 습한 겨울과 일제(日帝) 때문이다. 뼈에 스며드는 듯 으슬으슬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매운맛을 즐기며 땀을 내는 음식문화가 발전했다. 1930년대 일제 침략으로 중화민국 수도가 충칭으로 옮겨오면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때 훠궈를 맛본 이들이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갔고,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 전국 각지에서 충칭 훠궈를 외식사업으로 내면서 번성하게 됐다.

충칭 훠궈는 얼얼하게 매운 마라(麻辣)맛이 특징이다. 그래서 마라훠궈(麻辣火鍋)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 훠궈라면 얼얼하게 매운 음식으로 알려진 것도 충칭식 훠궈가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마라는 화자오(花椒)·고추·팔각·정향·후추·회향·더우반장 등 다양한 향신료를 조합해 만드는데, 이 중 화자오가 핵심이다. 마라맛이 바로 화자오에서 나온다.

훠궈로 제대로 보양하려면 우선 국물부터 마셔야 한다. 훠궈 냄비는 대개 태극 모양으로 가운데가 나뉘어 있다. 한쪽에는 뽀얀 국물이, 다른 한쪽에는 시뻘건 국물이 담겨 있다. 뽀얀 국물은 백탕, 뻘건 국물은 홍탕이라고 부른다. 둘 중에서 백탕만 마시기를 권한다. 홍탕은 너무 맵고 얼얼해 입이 마비된다. 음식을 제대로 맛볼 수 없고, 심하면 다음날 화장실 가기도 고통스럽다. 국물을 맛본 다음에는 각종 재료를 본인이 한 번에 먹을 만큼씩만 넣어서 익힌다. 성격 급한 한국사람들은 대개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쓸어 넣는데, 이렇게 하면 각 재료의 맛을 재대로 음미할 수 없다. 보양을 위해서는 양고기가 가장 좋다. 중국인들은 “양고기는 몸에 따뜻함을 주고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보양식”이라고 믿는다. 하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오죽 양고기가 좋으면 양 대가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양고기라고 속여 팔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