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부터 협동조합에 비조합원의 투자가 가능해졌다. ‘우선출자’를 허용하는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다. 우선출자는 이익잉여금을 조합원보다 우선해서 배당받을 수 있는 권리로 주식회사의 우선주와 비슷한 개념이다. 배당은 받지만 조합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의결권과 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협동조합 업계에서는 우선출자 제도 도입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외부 투자자 유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조합원 자격 대신 배당 수익만을 얻는 투자자가 유입되면 ‘협동조합의 정신’이 훼손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협동조합들은 만성적인 자금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조합원 출자금은 협동조합기본법상 ‘자본’으로 인정받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부채로 취급받는다. 금융권에서는 출자금을 조합원 탈퇴로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돈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 공동으로 소유하는 협동조합의 특성을 자금 회수가 어려운 원인으로 보기 때문에 대출 승인이 쉽지 않고, 대출 한도도 주식회사보다 적다. 강민수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장은 “협동조합이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내부적으로 조합원 출자와 외부적으로 금융권 대출밖에 없는데 모두 현실적인 한계가 있고, 이를 우선출자제 도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는 우선출자가 ‘1인 1표’로 운영되는 협동조합 정신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영리단체 소속의 한 변호사는 “협동조합은 주식회사와 달리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기본인데, 협동조합 설립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부 투자자가 유입돼 자금 회수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경영에 간섭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기본법 22조의2에 따르면, 우선출자의 총액은 자본의 30%로 제한된다. 동법 시행령에서는 우선출자의 발행 요건을 ▲직전 연도 경영공시 ▲부채비율 200% 이하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는 협동조합기본법상 일반협동조합에만 적용된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상의 생협과 배당을 금지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올해 9월 기준 국내 일반협동조합 수는 1만6329개. 2018년 기준 협동조합 평균 부채비율은 106% 수준으로, 전문가들은 대다수의 협동조합이 우선출자 요건을 충족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용진 공익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우선출자 상한 비율인 30%는 경영상으로 판단했을 땐 상당한 규모이기 때문에 출자자의 영향력을 배제할 순 없을 것”이라며 “만약 협동조합이 우선출자자에게 손해를 미칠 수 있는 내용으로 정관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우선출자자 총회의 의결을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선출자자들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민수 센터장은 “협동조합이 주식회사화(化)된다는 우려에도 우선출자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고 돈을 벌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면서 “만약 협동조합 원칙을 저버리고 수익만 좇는 형태로 운영하는 조합이 있다면 그건 우선출자제 도입 여부와 무관하게 이미 정체성이 불분명한 조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