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대응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국경 통제였습니다. 초기에 외국인 입국 제한을 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7일 오후 서울대 의대 '코로나19 과학위원회'가 주최한 웨비나(인터넷 세미나)에 참석한 천젠런(陳建仁·69) 전 대만 부총통은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공중보건대학원 방역학 박사로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대만 위생복리부(우리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코로나 유행 초기 대만 부총통으로서 방역 조치를 주도한 그에게 '대만의 대(對)코로나 병기'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이날 웨비나에서 "초기부터 중국 데이터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우한 현지 실사를 마친 뒤 선제적으로 방역 강화 조치를 실시했다"고 했다. 대만은 지난 2월 6일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했고, 대만은 3월 19일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외국인을 대상으로 문을 닫아걸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인을 대상으로도 전면 입국 금지를 하지 않았다.
이런 강력한 입국 제한 조치 결과 지난 6일까지 대만 누적 코로나 확진자는 476명, 사망자는 7명에 불과하다. 대만 코로나 사망률은 1.5%로 전 세계 평균 3.8%의 절반 이하다. 지난 4월 3일 이후 대만에서는 국내 코로나 감염 사례가 나오지 않고 있다. 대만과 중국 본토까지 거리가 고작 130㎞에 불과한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다. 반면 우리나라는 7일 0시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 1만4519명, 사망자 303명이다.
그는 "대만 역시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그나마 반도체 업체, IT 기기 제조 업체는 버틸 수 있었지만 관광업계와 택시기사 등은 입국 금지로 신음했다"며 "이들에 대한 재정 지원 정책을 펴면서 입국 금지에 대한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2002년 사스 사태 때 국민 84명이 사망한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방역 체계를 재정비했다. 평소에는 대만 위생복리부 산하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대응을 하지만 팬데믹(세계적 유행) 상황이 되면 중앙전염병상황지휘센터(CECC)를 가동하고 대만 총통이 임명한 센터장이 전권(全權)을 가지고 방역 정책을 추진하게 하는 제도 개혁도 이뤄졌다.
그는 국내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격상에 대해서도 "위상보다도 질병 컨트롤타워로서 수장이 얼마나 실질적 권한을 가지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지난 5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과 천젠런 전 부총통을 코로나 유행의 '숨은 영웅'으로 꼽았다. 천 전 부총통은 "정은경 본부장을 개인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는데 기회가 되면 언제든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방역에서 국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질병관리본부의 방역 대책을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한국 확진자·사망자 통계를 보면 한국도 코로나를 잘(very good) 막고 있다"며 "다만 방역 당국보다도 개인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는 국민들의 동참 덕분에 한국의 코로나 방역이 성공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 선포가 너무 늦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코로나가 18국에 퍼진 상황에서 1월 30일에야 PHEIC를 선포했다"며 "너무 오랜 시간 많은 국가가 코로나의 중대함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다"고 말했다.
천젠런은 지난 5월 부총통직을 그만두고 학계로 돌아가 현재 대만 중앙연구원 펠로 연구원으로 코로나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