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첫 확진자가 발생한 지 반년이 지난 가운데 항공업계는 위기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때 월 1000만명에 달하던 항공 여객은 80% 가까이 감소했으며, 특히 국내 항공사 매출의 90%를 차지하는 국제선 여객 수는 코로나 이전 대비 약 3%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 항공업 재편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됐던 아시아나항공·이스타항공 인수 계약마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항공사의 1년 농사를 결정 짓는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지만 전 세계에서 코로나 확산세가 잦아들지 않으면서 휴가철 특수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항공업계 한 임원은 "문제는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면서 "이 상태대로라면 코로나로 직간접 종사자가 80만명에 달하는 항공업이 공중 분해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주기장에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여객기가 세워져 있다. 이날은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요구한 선결 조건 이행 마감일이었지만,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체 항공 여객 수가 75% 감소하면서, 이스타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 계약은 무산 위기에 놓였다.

◇국제선 승객 97% 감소

코로나 사태 이후 국내 항공사들의 영업 성적표는 처참한 수준이다. 국내에서 코로나가 발생하기 직전인 지난 1월 1~19일에 비해 이달 1~19일 항공 여객 수는 75% 감소했고, 운항 편수는 60% 줄었다. 그중에서도 국제선이 더 큰 타격을 입어 국제선 여객 수는 97%나 감소했다. 현재 국제선 항공편 한 대당 평균 탑승객 수는 26명에 그쳐 사실상 텅 빈 채 운항하고 있다. 국내 한 항공사의 영업 담당 직원은 "국내 항공사의 매출 90%는 국제선 영업이 차지해왔는데 해외로 여행을 가는 수요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무작정 비행기를 세워둘 수 없으니 비즈니스 수요가 있는 국제선 노선을 중심으로 운항해 적자 폭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국내선 수요가 코로나 이전 대비 약 90%까지 회복된 것이 항공사들엔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다. 덕분에 국제선과 국내선을 포함한 전체 월별 여객 수도 지난 4월 역대 최저치인 135만3747명을 기록한 이후 조금씩 늘면서 지난달에는 234만3200명을 기록했다. 다만 이 수치도 전년 같은 달 여객 수의 5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현금 확보에 사활 건 항공사들

항공사들은 비행기 운항으로 수익을 낼 수 없게 되자 매달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하는 고정비(리스료·임금 등)를 충당하기 위해 자산 매각이나 조직 슬림화 등 '허리띠 졸라매기'로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대한항공은 20일 "프랑스 파리에 있던 구주(유럽) 지역본부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있던 동남아 지역본부를 최근 폐쇄했다"고 밝혔다. 이 지역본부들이 맡았던 영업·운송·화물 기능은 각각 분리해서 국가별 지점이나 본사가 담당하기로 했다. 대한항공은 김해발 국제선 운영 재개 시기가 불투명해지자 부산·경남 일대에 연고를 둔 국제선 객실 승무원을 대상으로 운영해온 부산 거점 근무제도 폐지했다. 김해국제공항에서 근무해온 객실 승무원 100명은 유급휴직이 끝나는 11월부터 인천국제공항에서 근무하게 된다. 이 회사는 최근 기내식·기내면세점 사업부를 1조원에 한앤컴퍼니에 매각하기로 했다.

저비용항공사(LCC)인 제주항공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여분의 항공기 엔진 5개를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다음 달 유상증자를 통해 1600억원을 조달할 예정이다. 티웨이항공은 다음 달 642억5000만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운영자금을 조달할 계획이다.

◇이스타·아시아나 인수 계약 무산 위기

코로나 여파로 국내 항공업 재편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말 국내 항공사 간 첫 인수 사례로 주목받았던 이스타항공 인수 계약은 파기 수순에 들어갔다.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미지급금 800억~1000억원의 해결을 요구했지만 지난 15일까지 이스타항공이 이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에 계약 해제를 통보하는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상태다.

이스타항공 문제는 신용카드 업계로도 불똥이 튀었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의 인수 계약 무산 가능성이 커지면서 카드사들은 이스타항공의 항공권 취소 대금 100억원을 떠안을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11월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모빌리티(이동 편의 서비스) 그룹으로 도약하겠다고 발표했던 HDC현대산업개발도 지난달 "아시아나항공 인수 조건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면서 계약을 무기한 연기했다. 지난달 말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과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한 차례 만났지만 양측 간 대화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고 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항공업계에 불어닥친 코로나 충격은 최소 2~3년은 지속될 것"이라며 "항공업계 수익성이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는 쉽게 돌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몇몇 항공사는 파산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