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risk) 관리에 빈틈없는 리더십을 보여줬지요." "자만하거나 방심하지 않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어요. 부하들에게 '적을 업신여기면 반드시 패한다(輕敵必敗)'고 경계했지요." "공정한 업무 처리와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신뢰를 얻어냈습니다."
서울 중구 회현동 사무실에 모인 '이순신리더십연구회' 회원들에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무엇인가' 묻자 대답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2004년 창립된 이 모임은 올해 1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이순신 리더십을 주제로 정기 세미나를 77회 열고 강연·답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행사 대신 회원 14명이 논문 한 편씩을 쓴 단행본 '이순신 정신과 리더십'(자연과인문)을 냈다.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인 연구회 지용희 이사장은 대학 시절부터 '이순신 마니아'였다. "경영학을 공부하며 이순신 장군의 전략·전술과 리더십이야말로 총칼 안 든 전쟁터인 국제 경제 상황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여러 차례 기업에서 관련 강의를 하다가 각계의 '이순신 고수(高手)'들과 함께 뜻을 모아 연구회를 결성했다.
김성수 법무법인 아태 대표변호사,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 김종대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방성석 ㈜이글코리아 대표이사, 오세종 장은공익재단 이사장, 장호준 SC제일은행 부행장…. 다들 이순신에 관해서라면 학자 못잖은 식견과 관심을 지닌 사람들이다. 여기에 '난중일기' 완역본을 낸 전문가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합류했다.
지 이사장은 "77번이나 세미나를 열 수 있을 정도로 이순신 장군은 넓고 깊은 분"이라며 "앞으로도 100번은 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저서 '위기의 시대, 이순신이 답하다'를 쓴 방성석 대표이사는 "경영이란 면에서 이순신 장군을 볼 때, 기록 정신에 철저한 '기록 경영', 창의적 정신으로 거북선을 개발하고 무기 체계를 개선한 '창조 경영', 신상필벌을 칼같이 한 '원칙 경영', 병사들이 둔전(군량을 마련하기 위한 토지)을 경작하게 한 '자립 경영' 등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장군의 일생을 돌이켜볼 때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 있었다"고 했다. 명량해전 출정 때 피란을 떠났다가 5리를 되돌아온 백성들이 이순신 장군 앞에 꿇어앉고 울면서 '장군을 따라가겠다' '이젠 살았다'고 했던 장면이다. "그만큼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던 것이죠."
오세종 이사장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에서 거둔 '23전 23승'은 단순히 확률로 보면 800만분의 1쯤 된다"고 했다. "숱한 악조건을 딛고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 선승구전(先勝求戰·미리 이겨놓고 싸움) 했던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종종 '백의종군'이란 말을 무분별하게 쓸 때마다 이들은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한다. "자기들을 미화하려고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함부로 인용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분들이 장군의 10분의 1만 따라갔더라도 나라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한 회원이 문득 "장군의 개인적인 일생 자체는 우울한 회색빛이 아니었을까…"라고 탄식하자 "행불행을 따질 겨를도 없으셨을 거예요"란 말이 돌아왔다. "인간은 대의(大義)를 위해 몰입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하지요. 아마 그분도 그러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