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12일,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로버트 아이거(Robert Iger)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었다. 1998년부터 공을 들여 60억달러(약 7조2000억원)를 들인 상하이 디즈니랜드의 역사적 개장 행사(6월16일·목요일) 때문이었다. 6개월새 11번째 상하이행(行)일 만큼, 회사와 아이거 자신의 명운(命運)을 건 승부처였다.
일요일인 그날 저녁, 미국 올랜드 디즈니월드에서 25㎞쯤 떨어진 펄스의 나이트클럽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터졌다. 올랜드 소재 디즈니 본사 테러 경보가 발령됐고 직원 2명이 사망한 사실이 이틀 후 확인됐다.
최종 리허설과 인터뷰, 미팅 등 분(分) 단위의 숨가뿐 일정으로 꽉찬 수요일 아침엔 올랜드의 디즈니 리조트에서 전날 저녁 악어가 두살 짜리 아기를 물고 사라졌다는 소식이 날라왔다.
1971년 디즈니월드 개장 후 월트디즈니 역사상 가장 중대한 프로젝트 마무리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아이거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개장일 아침(16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내 이름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했다. 호텔 라운지에서 곧바로 성명서 작성을 시작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구술했다.(중략) 15분후에 성명서가 발표됐고 방으로 돌아왔다. 할일이 많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있다가 제니아(최고홍보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 부모님과 통화를 해봐야겠소’라고 했다.”
'진실'과 '존중'으로 최악의 위기 해결
아이 부모와 한참 통화하며 사과한 아이거는 직통전화번호를 알려주며 “필요한 게 있으면 아무 때건 전화해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얼마나 흐느꼈는지 양쪽 콘택트렌즈가 모두 빠져버렸다. 지난 2주동안 내게 힘을 주었던 아드레날린이, 이 프로젝트가 내게 의미하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하략)”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린 아이거는 30분 후 중국 부주석과 주중 미국대사, 상하이 공산당 비서, 상하이 시장 등과 면담을 마치고 중국어를 곁들인 개장연설을 했다.
97년 역사의 월트디즈니의 6번째 CEO로 2005년부터 15년간 재임하다가 올 2월말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난 로버트 아이거가 최근 한국어로 번역출간된 자서전 ‘디즈니만이 하는 것’(원제 The Ride of A LifeTime)’에서 밝힌 실화(實話)이다. 이 책에는 방송국 말단 보조로 시작해 디즈니에 인수당한 ABC 출신으로서, 인수한 회사의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그가 현장에서 부딪히며 겪은 수모와 가치, 인생훈(人生訓)이 담겨있다.
무명 대학 출신…새벽 4시 기상과 뉴욕타임스
취임 당시 58조여원이던 디즈니 시가총액(時價總額)을 300조원으로 5배 가까이 늘린 그는 1951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노동자 동네에서 출생해 자랐다. 대학 2학년때까지 거의 매 주말 밤을 동네 피자헛에서 피자를 구으며 보냈고 대학 졸업(우등 성적)후엔 작은 케이블방송국의 무명 기상 캐스터를 거쳐 주급(週給)150달러의 스튜디오 심부름꾼으로 밑바닥 생활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ABC스포츠로 옮긴 아이거는 승진을 거듭해 41세에 ABC방송 사장이 된다. 1995년 디즈니가 ABC를 인수한 뒤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CEO에 올랐다.
명문 대학과 MBA 출신이 즐비한 미국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아이거는 ‘극소수 예외자’였다. 무명(無名)의 이타카대학(Ithaca college) 커뮤니케이션학과 학사 졸업장 한 장 뿐이라는 학력이 웅변한다. 작년 9월22일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타카대학이라고? 모두 몰라했지만 내게 열등감은 없었다. 나는 구찌 신발이나 고급 셔츠를 신지 않았다. 입을 형편도 못 됐다. 하지만 나는 매우 놀랄만한 근로 윤리(prodigious work ethic)를 갖고 있었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이 먼저 나에게 의지했다. 그들이 나에게 요청해오면 반드시 일이 해결된다는 걸,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오늘날까지 나는 거의 매일 새벽 4시15분에 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다. 하루 과업을 수행하기 전에 사색하고 독서하고 운동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전화통화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새벽시간이 없다면 나의 생산성과 창의성도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고 했다.
기상 직후 그는 어두운 방에서 명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운동을 한다. 오전 6시30분~7시 가장 먼저 회사 문을 열고 출근한다. 그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진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열살 무렵부터 나는 앞마당에 배달된 ‘뉴욕타임스’를 들고 들어와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까지 식탁에 앉아 꼼꼼히 읽곤 했다”고 밝혔다.
'브랜드·기술·글로벌'…3개 핵심전략으로 매진
하지만 그가 CEO에 취임했던 2005년 당시 디즈니는 침몰하고 있었다. 오래된 동화(童話) 속 애니메이션과 평면적 화면의 진부한 스토리에 머물렀고 디지털 변신은 지지부진했다. 그는 2004년 15차례 진행된 CEO 임용 인터뷰때부터 ‘고품격 브랜드 콘텐츠의 창출’ ‘기술(technology)에 대한 투자’ ‘글로벌 성장’이란 3개 핵심 전략으로 CEO 업무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그는 픽사(2006년), 마블(2009년), 루카스필름(2012년)에 이어 21세기 폭스(2019년) 같은 초대형 인수합병(M&A)을 연달아 성공시켜 품질과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중국 등 해외 비즈니스도 확장했다. 작년 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시작한 ‘디즈니플러스’는 시장 예상을 깨고 첫날 1000만 가입자를 모았고 5개월 만에 그 수를 5000만으로 늘렸다.
아이거는 시종일관 "누구라도 정중하게 대하라. 모든 사람을 공정(公正)하게 대우하고 공감(共感)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 등을 인수할 때도 그의 가장 강력한 최종 무기는 '신뢰'와 '진실성'이었다.
이런 믿음에서 올 3월엔 "코로나 19 사태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 모든 급여를 포기하겠다"고 스스로 선언했다.
"일에서나 삶에서나 진정으로 겸손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사람들의 찬사(讚辭)를 지나치게 믿기 시작하는 순간, 이미 삶의 방향은 상실된 것이다." 자서전에 쓴 그의 마지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