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된 지난 몇 달간 끔찍한 외신 사진들이 매일 쏟아져 들어왔다. 남미 에콰도르의 과야킬에선 바이러스로 사망한 시신들이 비닐에 덮혀 거리에 방치되었고,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선 장례시설이 부족하자 공립 아이스링크에 임시영안실을 차려놓고 관을 모아두었다. 더 충격적인 모습들은 미국 뉴욕에서 나왔다. 흰 천으로 덮은 시신을 지게차로 들어 냉장용 트럭에 싣고 있었다. 얼마나 경황이 없으면 그랬을까? 뉴욕은 이번 코로나전염병으로 1만 9400여명이 사망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코로나 희생자 가족들은 감염 위험 때문에 고인들과 제대로 얼굴도 못보고 떠나보내야 했다.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에게 조차 꼼짝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죽음을 생각해본다.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최근 서울에서 열렸던 두 사진전은 모두 가족의 죽음을 소재로 했다. 죽음을 앞둔 가족이거나 가족의 죽음 이후 다가온 고통을 사진으로 표현했다.

김선기의 '나의 할머니, 오효순'. 사진가는 치매환자인 할머니와 옆에서 돕는 어머니를 15년 동안 기록했다. 어느 날 오후 베란다에서 볕을 쬐는 할머니의 모습에 따뜻함을 느꼈다고 했다.

사진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린 김선기(41)의 ‘나의 할머니 오효순’은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린 시절 가끔 명절에만 만났던 할머니와 갑자기 함께 살게 된 사진가는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조심스럽게 고백했다. 사진가는 15년전 치매로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이후 지난해 3월 돌아가시기 2시간 전까지 사진으로 남겼다.

비록 구순의 치매를 앓던 할머니였지만 화려하게 피어난 들판의 꽃들처럼 인생의 한 시절을 가슴에 앉고 사셨을 것이다.

책으로 묶은 흑백 사진들 몇 장이 눈길을 끈다. 잎이 무성한 꽃과 넝쿨이 그려진 외투를 입고 가방까지 들고 나온 할머니의 뒷모습, 책의 첫 사진이다. 아파트 입구 계단에 앉아 어딘가로 가고 싶으나 목적지도, 가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치매 초기에 할머니는 이유 없이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가 밤새 소리치는 날엔 가족들도 뜬 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삯바느질로 6남매를 키운 할머니는 자신이 치매라는 것보다 몸이 남긴 기억만으로 곰인형의 눈썹과 수염을 바느질로 남겨놓았다.

방구석에 앉아 있는 곰 인형 코 주변에 검은 실로 꿰맨 자국이 튀어나와 있는 사진이 있다. 할머니는 일제 때 세상을 먼저 떠난 남편을 대신해서 평생을 삯바느질로 혼자 육남매를 키웠다. 치매환자들도 오래 반복한 몸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서랍을 다 꺼내놓고 정리하거나 곰인지 사람인지 모를 인형의 얼굴에 눈썹과 수염을 바느질하는 것도 할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기억이었다.

사진가는 치매환자인 할머니와 옆에서 돕는 김씨 어머니를 15년 동안 기록했다.

사진가는 15년 동안 치매 할머니를 돌보신 어머니께 사진들을 바친다고 했다. 사진엔 어머니가 수저로 할머니에게 밥을 드리거나, 고된 하루에 세수를 하며 숨을 돌리는 순간도 있었다. 책 표지엔 어느 오후 베란다에서 볕을 쬐면서 생각에 잠긴 할머니 얼굴 옆모습이다. 백발과 주름으로 가득한 얼굴, 생각에 잠긴 눈빛이지만 입 꼬리가 올라가서 미소처럼 보였다.

사진가 최영귀는 남편과 사별 후의 상실감을 셀프포트레이로 재현했다. 사진가가 헝클어진 침대 위에서 행복했던 시절의 한순간을 담은 침실 벽에 걸린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서울 종로 공간291에서 열린 최영귀(66)의 ‘모놀로그(monologue)’는 남편이 떠난 후 상실감으로 가득한 현재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독백처럼 풀어보여준다. 사진들은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형식으로 촬영되었다. 셀프 포트레이트는 사진가가 자신을 피사체로 촬영해서 표현하는 방법이다. 폐암 진단 후 7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남편과 이별한 사진가는 늦은 나이에 배운 사진만이 슬픔의 언덕을 넘는 방법이라고 했다. 너무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부끄럽다는 사진가는 전시된 사진들로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심리 상태를 보여주었다.

4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후의 고통을 끊임없이 숨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 부부는 사진으로 남아 벽에 걸려 있지만 그것을 침대 위에 쓰러져 혼자 바라보는 여자는 어깨를 드러내고 있다. 제대로 옷을 갖춰 입고 침실 밖으로 나갈 만큼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싱크대 구석에 으깨진 딸기가 버려진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사진가는 평소라면 상해서 버린 딸기가 아무렇지 않겠지만 시간이 지났다고 버려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꽃을 머리에 이고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사진가. 남편이 세상을 떠난후의 고통을 사진가는 세상과 단절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편의 옷장 속이나 식탁 밑에 숨어들어가 있는 모습들도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으로 보인다. 남편의 구두 한 쪽에 두발을 억지로 넣어 보거나, 머리에 꽃을 얹고 깊은 숲 속으로 숨기도 한다. 하얀 눈밭과 바다로 걸어가고 있는 사진도 있다. 하얀 천위에 교차된 두 손은 고인과 작별을 하는 순간이었다. 기자의 한 지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가장 슬픈 것을 “더 이상 엄마의 따뜻한 손을 만지지 못하는 것”이라 했다.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난 이 봄, 살아남은 가족들은 어딘가에서 조용히 눈물을 닦고 있을 것이다.

남편과 마지막 이별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손길은 얼마나 아쉬웠을까? 작가의 붉은 손과 남편의 흰 손이 교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