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사상 처음으로 '국가채무 비율 40%' 빗장이 풀리자마자 여당에서 "60%를 넘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위기 때 어느 정도 적자재정은 불가피하지만, 현 정부·여당처럼 재정건전성 관리 의지가 없다면 채무 비율이 60%가 아니라 80%, 100%를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우려다.

코로나發 수출쇼크… 쌓여만 가는 부산항 컨테이너 -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와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신종 코로나 충격으로 4월 수출은 24.3% 급감했고, 무역수지도 98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멈추고 적자로 돌아섰다.

①고령화 감안하면 이미 빚은 많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3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9%)에 비해서 크게 낮다. 청와대와 여당이 "빚을 더 늘려도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그러나 나랏빚이 많은데도 잘 버티는 나라는 미국(107%), 일본(224%), 프랑스(123%)처럼 기축통화를 갖고 있는 국가들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닌 뉴질랜드(35%), 호주(44%), 노르웨이(46%), 덴마크(48%), 스웨덴(50%) 등 다른 선진국들은 대부분 채무 비율을 낮게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숨겨진 빚'도 많다. 일반정부에 공기업 부채를 합친 공공 부문 부채는 1078조원으로 GDP 대비 56.9%에 이른다.

여기에 고령화까지 고려하면 이미 우리나라는 빚이 너무 많고 씀씀이가 큰 편이다. 독일은 1970년대 고령사회에 진입할 당시 국가채무 비율이 20%도 되지 않았고, 덴마크와 스웨덴도 30%를 넘지 않았다. 한국은 고령사회에 진입한 2017년 이 비율이 36%였다. 여기에 어느 나라보다도 고령화 속도가 빨라 이에 따른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돼 있다.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 지출은 2017년 10.6%로 EU 평균(25.4%)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2060년에는 EU 평균(27%)을 넘는 28.6%에 달할 것"이라고 했다.

②위기 때마다 채무 비율은 껑충 뛴다

지금 빚 부담에 시달리는 다른 나라들도 처음부터 국가채무 비율이 높았던 것은 아니다. 고령화, 재정 위기 등 돌발적인 위기를 거치며 나랏빚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증가했다. 일본은 고도성장기이던 1990년 국가채무 비율이 40%대에 불과했으나 장기 불황과 고령화, 방만한 재정 운영이 겹치며 현재는 채무 비율이 200%가 넘는다. 그리스도 1981~1996년 좌파 포퓰리스트가 집권하는 동안 채무 비율이 25%에서 103%로 급증했다. 우리나라도 1997년 11.4%였던 국가채무 비율이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2004년엔 거의 2배인 22.4%로 뛰었다.

문제는 코로나 위기로 돈 쓸 일이 한참 남았는데 정부와 여당이 선심 쓰느라 재정 여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헌재 전 부총리는 이번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금액을 최소 600조원으로 추산했다. IMF 위기 때 쓴 공적자금 규모가 GDP의 30%쯤 됐다는 얘기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대규모 확장재정이 경제 활력 회복과 세수 증가로 이어지지 않으면 더 이상 쓸 카드가 없어지게 된다"며 "피해가 집중되거나 살릴 수 있는 영역에 집중적으로 재정이 투입돼야 하는데, 현재 그렇게 쓰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③신용등급 떨어지면 진짜 위기 온다

정부와 여당 인사들은 "국가채무 비율이 몇 퍼센트 포인트 증가한다고 당장 나라가 망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 신용등급에는 단기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지난 2월 한국에 대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오는 2023년 46%까지 높아질 경우, 중기적으로 국가 신용등급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30조원 규모의 3차 추경까지 실시하면 올해 국가채무 비율은 피치가 경고한 46%선에 단숨에 근접하게 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최근 이례적으로 한국에 '균형 재정'을 강조했다.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국채 조달 비용이 증가할 뿐 아니라, 국책은행과 민간 기업의 신용등급에도 줄줄이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 금융권 고위 인사는 "올해 실적을 바탕으로 내년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연쇄 하락하면 내년에 진짜 경제 위기가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