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엄마 보고 싶었어". 세상을 떠난 딸이 가상 현실에서 인사를 건넸다. '너를 만났다'가 차가운 기계로 따뜻한 인류애를 풀어내며 찬사를 받고 있다.
6일 밤 방송된 MBC 스페셜 특집-VR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는 3년 전 혈액암으로 숨진 나연이의 가족들이 VR기기를 통해 가상 현실에서 나연이를 만나는 모습이 그려졌다.
네 아이의 엄마였던 장지성 씨는 2016년 가을, 일곱 살이 된 셋째 딸 나연이를 떠나보냈다. 목이 붓고 열이 나기에 그저 감기인 줄 알았던 병은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희귀 난치병, 일종의 혈액암이었다. 나연이는 발병 한 달 만에 부지불식간에 가족의 곁을 떠났다.
병은 빠르게 나연이를 빼앗아갔지만 그리움은 한없이 길었다. 첫째 재우, 둘째 민서, 막내 동생 소정까지. 나연이와 생생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장지성 씨와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나연이 아빠는 딸을 꿈에서 만난 일을 고백하며 "아내가 '너무 좋았겠다'고 부러워 했다. 저도 꿈에서 볼 수만 있다면 하루 12시간이라도 자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그리움이 커도 VR로 나연이를 다시 만나는 건 별개였다. 재우는 나연이 얘기에 유독 슬퍼했고, "나연이는 착했다. 항상 웃었다. 민서보다 나연이와 더 친했다. 나연이 얘기를 하면 너무 슬퍼진다. 말하고 싶지 않다.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매일 생각한다고 했다"고 고백했다. 민서는 "엄마가 울 때가 많다. 저는 그게 보기 싫어서 나연이 얘기를 별로 안 꺼낸다"고 속 깊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연이 가족은 고심 끝에 VR 촬영을 결정했다. 장지성 씨는 단 하루만이라도 나연이가 좋아하던 미역국도 끓여주며 "한 번도 잊은 적 없다"고 말해주고자 했다. "기억하지 않으면 나연이가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이 잊힐까 두렵다"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을 담아 나연이 가족들이 '너를 만났다' 프로젝트에 동참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사용되는 '디지털 휴먼'을 이용했다. CG를 이용해 사람처럼 감정이 있고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인물을 구현한 것. 국내 최고의 VR(가상현실), VFX(특수영상) 기술을 가진 비브스튜디오가 협업했고 360도로 둘러싸인 160대의 카메라가 비슷한 대역의 몸을 토대로 나연이의 기본 뼈대를 만들었다. 여기에 모션 캡처 기술이 더해지는 등 CG 작업이 계속됐다.
엄마와 나연이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고 싶어 목소리 구현 작업도 진행됐단다. 완벽한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체험자가 가상현실 속 캐릭터와 상호작용 하며 체험을 하는 동안 짧은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어내려 했다는 것. 몇 분 남아 있지 않은 짧은 동영상에서 추출한 나연이 음성을 기본으로 하되, 부족한 데이터 분량은 5명의 또래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각 800 문장 이상을 더빙하고 ‘딥러닝(인공신경망 기반 기계학습)’ 과정을 거쳤다.
무엇보다 '너를 만났다'의 목적은 '좋은 기억'을 만들어 내는 것.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엄마를 위해 최고의 경험을 선사할 공간으로 나연이와 둘만의 추억이 남아있는 공원이 선정됐다. 더 나아가 아이와 손을 잡거나 물건을 건네주면 받을 수 있도록 설정해 상호작용이 가능한 정교하고 몰입감 높은 체험도 만들어졌다.
이렇게 가상 현실에서 다시 만난 나연이는 엄마의 손을 잡으며 "내 손 잡으니까 좋지?", "엄마 보고 싶었어"라고 말했다. 또한 "엄마가 울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해 보는 이들까지 뭉클하게 만들었다. 화려하지만 차가운 VR 기계 안에 담긴 가상 현실이 한편의 소품집 같은 따뜻한 감성으로 '너를 만났다'를 가득 채운 순간이었다.
광활한 대자연부터 뉴스에 나올 법한 이슈가 펼쳐지는 현장까지. 다큐멘터리의 영역에 제한은 없다. 여기에 '너를 만났다'는 다시는 볼 수 없는 세계를 VR로 풀어내며 또 다른 지평을 열었다. 나연이와 가족들의 만남을 넘어, 시청자와 제작진의 따뜻하고 발전적인 기획 의도가 만났다. 이성의 영역으로 감성을 충족시킨 '너를 만났다'의 진정한 의미다. / monami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