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선 워싱턴지국장

미국 대선이 11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금세기 최악의 거칠고 추한 대결이 될 것이라고들 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4년 더'를 외치는 사람들과 트럼프 치하에서 단 하루도 더 살기 싫은 사람들의 격한 대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워싱턴 시내에서 "2020년 대선, 제정신이면 누구든"이란 스티커를 붙인 자동차를 봤다. 차량 내부에 온통 민주당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스티커를 붙여 놓은 우버 차량을 탄 일도 있다. 민주당 지지자가 대다수인 워싱턴에선 흔한 풍경이다. 반대로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선 빨간 모자를 쓴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 유세에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재선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건 상식이다. 하지만 미국 대선은 선거인단 제도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2016년의 트럼프처럼 유권자 전체 득표수에서 지고도 더 많은 선거인단 수를 확보해 승리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엔 플로리다주에서 승부가 가려지지 않아 재검표를 하느라 약 한 달 동안 대선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요즘처럼 양극화된 정치 상황에선 어떤 이변이 일어날지 몰라 현직 대통령이라도 마음을 놓을 순 없다.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의 가장 큰 자산은 취임 후 3년 동안 미국 경제가 좋아졌고 큰 전쟁도 없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핵 시험 유예 등도 이런 맥락에서 성공으로 포장해왔다. 북한과 전쟁을 할 수도 있었는데 자신이 막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020년에 들어서면서 미국 경제에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국제정세도 더 이상 미국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게 변하고 있다. 이라크의 미국 대사관이 공격받아 미군을 증파해야 했고, 김정은도 새로운 전략무기를 예고하면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자제의 빗장을 풀 태세이다.

트럼프로선 김정은이 올해 미국 대선에 끼어들어 자신의 재선을 망쳐버리고 싶어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법하다. 트럼프는 최근 "김정은은 11월 미국 대선에 개입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내가 선거를 치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방해하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우려와 달리, 전통적으로 미국 대선에서 외교정책은 비중이 작다. 최근 한 조사를 보면 미국인들의 관심사는 건강보험, 경제, 이민, 교육 순이다. 외교정책이 갖는 의미는 미미하고 그중에서도 북한이 갖는 비중은 더 작다.

물론 북한이 핵탄두 탑재 장거리 미사일을 미국 본토까지 날릴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할 무엇인가를 보여준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을 재선 승리와 연결짓는 트럼프는 대선 국면에 등장한 북한의 안보 위협을 '친서'나 또 한 번의 정상회담 제안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식어버린 '화염과 분노'에 다시 불을 붙이고 서랍에 넣어뒀던 '코피 작전'을 다시 꺼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위기감이 고조되면 미국인들은 전통적으로 그래 왔듯 지도자를 중심으로 결집할 것이다. 북한의 움직임이 오히려 트럼프에겐 재선 성공에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등장할 북한의 오해와 오산, 오판의 위험이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트럼프를 가장 깊게, 절박하게 연구해온 나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을 설득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끌어내진 못하고 있다. 대선 국면의 트럼프를 위협해 뭔가 얻어내겠다는 의도 역시 트럼프와 미국을 잘못 읽은 위험한 오산으로 보인다.